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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누구일까?

» 일본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15/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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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에는 아주 많은 아버지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다른 모습과 다른 환경을 지녔을 테지만, 공통된 바람을 가졌을 것이다. 아내에게 존중받고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가장이 되는 것. 그 자리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아버지 역할의 중요성은 정도의 차이를 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부성(父性)’을 온전히 보여주기는 너무 어렵다. 세상은 온통 좋은 아버지, 훌륭한 가장을 요구한다. ‘좋은 아빠’에 대한 지나친 강박을 호소하기도 힘들 정도로 그 역할은 당연시된다.

물론, 아빠라면 당연히 가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부성’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관한 논란의 여지도 있다. 어쩌면 ‘부성 본능’이라는 말은 믿음에 불과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사회에서 바라는 ‘아버지의 존재’ 또는 ‘아버지의 역할’은 언제나 있어왔다. 이 글에서는 우리 시대에 이야기되는 ‘부성’에 관한 논의를 다룬다.

가족은 인간 사회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다. 한 사회의 토대를 이룰 이 공동체에서 오늘날의 아버지들이 곤경에 빠져 힘겨워 보인다. ‘좋은 아버지’에 대한 정의도 혼란스럽다. 경제적 지원을 풍부하게 해줄 수 있는 ‘부자 아빠’가 좋은 아버지인지, 따뜻한 정서적 지원이 풍부한 ‘친구 같은 아빠’가 좋은 아버지인지, 심지어 모든 것을 다 만족하게 하는 ‘슈퍼맨 아빠’가 되어야 하는지…. 도대체 아버지란 어떤 존재여야 하며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 걸까.

‘아빠’라는 어설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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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학계는 물론이고 사회가 ‘아버지’ 또는 ‘아버지다움’에 주목한다. 자녀들의 자존감이나 사회성에 끼치는 아주 특별한 영향이 바로 아버지에게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쏟아지고 있다. 예컨대, 심리학자 빌러(Henry B. Biller) 박사는 아빠와의 관계 경험은 자녀들의 주도성과 공감 능력은 물론 신체건강, 정서 안정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보여준다.[1] 아버지가 자녀의 양육에 양적으로 혹은 질적으로 얼마나 많이 참여를 하고, 또 얼마나 많은 교감을 나누는가는 아이의 발달에 직접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녀의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아빠가 일으키는 긍정적인 영향은 짐작했던 것보다 크다. 누구나 내 아이가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원한다. 성공적인 삶의 근원에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을 비롯해 험난한 세상에서 온전한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자존감은 물론, 스트레스에 견디는 힘이나 자신을 통제하는 특별한 의지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한 사람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은 아버지라는 존재로부터 얻는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2] 내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빠는 어깨가 무겁다.

그뿐만 아니다. 아버지가 아이의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큰 영향을 행사하려면 무엇보다 아내에게 따뜻한 지지를 받아야 한다. 한 연구에서는 부부 관계가 좋은 가정일수록 자녀들의, 특히 딸의 경우에 지적 성장이 크게 촉진된다는 결과를 보였다.[3] 사회적으로 성공했거나 삶의 만족도가 높은 여성들의 공통점은 아버지와의 높은 친밀감을 갖춘 것이라고 한다. 이런 성공한 여성을 키워낸 아버지들의 공통점은 원만한 부부 관계와 높은 결혼 만족도를 가진 것이라고 한다. 좋은 아빠의 기본적인 조건은 좋은 남편이 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미국 텍사스 주립대의 랑글로스(Judith Langlois) 박사는 아버지를 개인의 삶에서 ‘사회화의 매개자’라고 정의했을 정도다.[4]

국내외 학계의 연구 결과들이 보여주는 아버지의 중요성, 즉 아빠의 양육 효과에 대한 다양한 결과들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세상이 요구하는 좋은 아버지에 대해서도 쉽게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좋은 아버지의 역할을 어떻게 갖추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 어떤 아빠도 좋은 아버지에 대한 모범답안을 보면서 자라지 못했다. 모든 가정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한 가정의 가장이 되기엔 준비의 시간이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결혼하면서 어쩔 수 없이 가장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설상가상으로 아이가 생기는 순간, 또 어쩔 수 없이 아버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남자는 자기 아이가 생기면서 그때부터 아버지가 된다고들 생각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아버지가 되는 것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버지가 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지 안다는 것이다. 나를 믿고 인생을 걸어온 아내와 내 능력에 생사가 걸린 아이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고 두렵기만 하다. 내 가정을 배제하고 나 자신을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참 막막하고 두려운 일이다.

00father1.jpg» 한겨레 자료사진(2013)

안쓰러운 부성(父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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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모성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본능이라고 알고 있다. 입덧을 하고 태동을 느끼고 열 달이라는 시간을 아기와 한몸으로 살다가 출산의 고통을 겪고, 젖을 물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엄마가 된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모성을 일으키는 호르몬을 지닌 엄마는 아이를 위한 희생이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모성과는 달리 부성은 어떤 본능을 말할 수 있을까.

류학자 피터 그레이(Peter B. Gray)는 부성은 인류 진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한다.[5] 돌보아야 하는 자식이 생기면 자식에 대한 애착과 관심을 두도록 행동이 진화했다는 설명이다. 일부일처제가 정착된 유인원이 가진 매우 독특한 행동 패턴이라는 것이다. 인간과 유전자가 가장 유사하다는 침팬지도 수컷은 교미를 할 뿐, 새끼를 돌보는 역할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침팬지 같은 영장류뿐만 아니라 포유류를 통틀어 수컷이 지속적으로 새끼를 돌보는 종은 전체의 3%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오죽하면 포유류를 설명할 때,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이는 동물이라고 할까. 그러므로 자식들에게 지속적인 자원을 제공하고 애정을 쏟는 역할은 인간에게 나타난 아주 특별한 행동양식이 분명해 보인다. 부성은 모성 본능만큼 확연하게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호르몬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도 아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가족에 대한 애착을 갖기 위해서는 사실상 여성과는 다른 특별한 인지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빠의 부성은 아기를 몸 안에 품었던 엄마의 모성보다 대략 열 달은 늦게 출발한다고 보아야 한다. 아빠도 엄마처럼 가슴 떨리는 열 달을 보내지만 부성과 모성은 생물학적으로 확연히 차이가 크다. 그 차이를 채우기 위해서는 아빠만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남자는 아내로부터 남편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아이로부터 아빠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제 그 이름에 맞는 역할을 찾기 위한 진심이 필요하다. 그 진심으로부터 부성은 본능처럼 불을 밝혀올 것이다. 심지어 문제행동 경향이 높은 남성일지라도 아버지가 되는 것이 결정적인 행동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밝힌 연구도 있다.[6]

아빠라는 이름은 상상하기 힘든 놀라운 힘을 가졌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00father3.jpg» 아빠는 아이의 발달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출처/ http://pixabay.com

아버지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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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들이 갖는 로망 중에 하나는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자기 고민을 아빠에게 털어놓고 상담하는 그런 일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성 친구이건, 장래 희망이건 그 어떤 고민거리도 아빠와 대화해가며 나누기를 원한다. 그때는 아버지가 가진 인생의 많은 경험과 깨달음을 전해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이런 로망을 이루는 아빠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빠와 아이가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는 장면은 참 드문 광경이다. 여성가족부가 2005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아버지와 고민을 나눈다’고 답한 자녀는 겨우 4%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버지들의 50.8%가 ‘자녀가 고민이 생길 경우 가장 먼저 나와 의논한다’고 대답할 정도로 아버지와 자녀 간의 관계의 거리는 멀었다.[7]

춘기에 접어들기 전의 아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면 자식과의 친밀한 사이는 정말 꿈같은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정서적 교류 없는 일방적 대화나 훈육은 폭력이나 다름없다. 지금이라도 소통하고 싶은 그 마음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아버지와 친밀감 없이 어린시절을 보낸 자녀는 성인으로 성장해도 그 관계가 어렵고 거북하다. 그만큼 함께 공유했던 정서와 삶이 중요하다.

평생을 자녀나 아내의 주변인으로 살고 싶지 않다면 가정이 생기는 순간부터 그 중심에서 살아야 한다. 아내를 사랑하고 아이들을 아끼는 자신의 마음을 믿어야 한다. 그 마음이 바로 노력으로 얻어낸 부성 확신이다. 아버지가 행복해야, 아내도 아이도 행복하다.

여러 사회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양의 의미가 크거나 경제적인 능력만을 요구하는 아버지상은 이미 과거에 접어든 것 같다. 급격한 사회적, 기술적 변화 앞에서 과거 아버지의 권위는 달라졌다. 가족을 책임지고 생계를 부양하는 가장의 책무는 여전하면서 이제는 자녀의 양육까지 정성을 다해야 하는 아버지의 어깨는 너무 무거워진 것 같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요구하는 자녀 양육은 단순히 아버지 역할이 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아버지만이 가질 수 있는 본성에 근거한 새로운 역할과 능력에 대한 확신을 의미한다. 단순한 희생이나 헌신이 아닌 시대가 요구하는 유쾌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00father6.jpg» 가족과의 사랑 속에서 부성은 빛을 발한다. 출처/ 영화, <파더 앤 도터(Father and Daughters, 2015)>

가족과 함께, 부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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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당신의 자식으로 사는 일이 쉽다고 말하는 자식은 많지 않다. 아버지도 누군가의 아버지로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인정하든 안 하든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모두 내 아버지의 관심과 보살핌, 그리고 사랑이 만든 결과물이다.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아버지는 가족을 지키고, 특히 자녀의 인생에 든든한 나침반이 되어주는 존재이다. 아버지의 역할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에 대한 방법이 변해가고 있다. 아버지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을 가족이 알아주고 지지해줄 때 좋은 아버지라는 이름은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 개인의 행복은 가족 안에서 아버지로서 느끼는 행복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비로소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제 우리는 삶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힘겨운 세상을 살아내느라 버거워하는 아버지의 가슴을 함께 위로해야 한다. 아버지에게도 위로와 위안이 필요하다. 아버지에게도 아버지의 그늘이 언제나 간절할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아버지는 아닐 수 있어도 어떤 아버지의 자식이 아닐 수는 없지 않은가.

부성애는 그것을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기꺼이 만들어낸 사랑이기에 더욱 위대하다. 그렇기에 가족과의 사랑 속에서 부성은 빛을 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