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 먹먹한 이름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으면서 제일 안쓰럽고 초라해지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중에서도 성별로 따지자면 남성이 아닐까. 가정에서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던 가장이 은퇴로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고, 나이가 들어 체력까지 떨어지는 걸 보면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다. 자식들이 알고 있는 이기문명을 쫓아가지 못하는 것을 볼 때는 면 더 그렇다.

아버지는 엄마처럼, 가족 구성원들의 세세한 부분을 다 꿰뚫고 있을 만큼 오지랖이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천성적으로 가족에게 살갑게 다가가 친밀하지도 않다. 숭고하고 거룩하다고까지 비유되는 ‘모성애’에 비해 ‘부성애’는 별로 얘기조차 되지 않는다. 요즘 들어 엄마와 또 다른 ‘아빠효과’ 대한 연구가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30~40대 이상 세대에게 가정 내에서 아빠의 존재 혹은 부성애는 낯선 이름 그 자체다.

그래서 오로지 가족을 먹여 살리며 그것만으로도 존재감을 인정받던 아버지가 그 역할을 내려놓게 되면 따라오는 감정들. 스스로 느끼는 자괴감과 그를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이 느끼는 안쓰러움은 참 우리를 민망하게 만든다. 젊은 시절 뼛골 빠지도록 일하며 자식들 먹여 살렸더니 이젠 쓸모없는 사람이 됐다고 홀대받는 신세가 된 아빠라는 존재. 엄마처럼 자식들과 친하지도 못하고, 감성적이지도 못하고, 표현도 서툴기에 늘 가족 하나하나와 거리감이 있기 마련이다.

아빠가 바깥일을 하면서 어떤 어려움과 설움이 있는지 그리고 얼마큼 우리를 위해 애쓰는지를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기에 그 감사함도 제대로 발현되기 어렵다. 그리고 나이 들어 은퇴로 가정에 돌아오면 그의 자리는 없다. 가정 내에서의 역할이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뒤늦게 가정 내의 역할을 찾는 아빠는 어색해 어쩔 줄 몰라 한다. 아빠에 대한 고마움, 미안함, 애틋함은 있는데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는 자식들. 그런 어색한 관계가 얼마나 많은지…. 가정에서의 기여도만큼 보상받지 못하는 가장, 우리의 아버님들..

모성애, 여자의 한, 어머님의 헌신 등을 다루고 이해하고 어루만지는 글과 말들은 많이 있지만, 아버지의 한, 설움, 소외됨 등을 다루고 어루만지는 글이나 말들은 흔하지 않다. 그만큼 표현하지 않는 것에 익숙한, 그래서 더 안쓰러운 우리 아버지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세상 다른 아버지의 어깨는 안쓰러워하며 공감하면서, 정작 내 아버지의 뒷모습에 가슴 아파했던 적은 얼마나 있었나. 아버지의 어깨가 더 처지기 전에 안마 한 번 해드리자. 아마 평생 안 해본 사람도 많을 거다. 나를 비롯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