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마음속 깊이 새겨지는 아버지의 존재

아이의 마음속 깊이 새겨지는 아버지의 존재

전철 플랫폼에서 아버지와 뒷모습이 비슷한 분을 발견하고,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분은 아버지처럼 몸이 좀 야위었고, 뒷짐을 지고 있었으며, 아버지의 것과 비슷한 모자를 쓰고 점퍼를 입고 있었다.

글 김성은(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연리지가족부부연구소 연구실장) 사진 홍경택(스튜디오100)

 

‘아버지가 여기 오실 일이 없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나 아버지를 뵐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그분을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가 아니었다. 순간 아버지 모습도 제대로 못 알아보는 딸이라는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분에게 향한 발걸음은 내 마음속에 늘 자리 잡고 있는 아버지와 시간을 많이 갖지 못한 아쉬움과 최근 들어 더욱 야위고 약해지는 아버지에게 잘해 드리고 싶은 마음의 발로였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편찮으신 곳이 늘어 점점 야위어 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지금까지 내 삶에서 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는지 자꾸 생각한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미성숙할 때는 아버지의 사랑과 존재가 나를 지탱하는 큰 힘이었음을, 매일을 힘차게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었음을 잘 인식하지 못했다. 마치 공기와 같은 아버지의 존재는 혹 사라지면 나의 생존과 안녕이 위협받는데도,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 소중함을 잘 몰랐다. 하지만 가족을 부양하고 책임지는 것이 무엇이고, 자녀가 느끼는 부모의 의미와 중요성을 피부로 체감하면서 아버지를 새로이 바라보았다. 가족을 위해 세월을 이기며 마음과 힘을 다해 살아온 아버지의 삶을 깊이 있게 느낀 것이다.

더불어 아버지의 존재를 당연히 여기던 마음 또한 사라져 갔다. 비록 서로에게 완벽한 아버지와 딸은 아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아버지가 계신 것에 감사하고, 힘들 때마다 힘이 되어 주신 아버지의 존재가 소중하다. 젊을 때와 달리 많이 약해진 아버지 모습에서 지난 세월동안 우리 가족에게 힘이 되어준 그 삶에 대해 애잔함마저 느낀다.

내가 아버지와 나의 관계 그리고 아버지의 존재를 되새기는 것처럼, 장성한 자녀들이 자신들의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 아버지가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자주 접한다. 깊이와 모양은 달라도, 나는 어린 자녀들이 아버지의 존재를 마음속에 새기는 것도 본다. 아버지가 내 곁에 얼마나 있어 주는지, 나와 얼마나 놀아주는지, 내가 힘들 때 얼마나 고민을 말할 수 있는지, 엄마랑 얼마나 싸우는지, 나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나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등 아버지를 느끼고 안다.

아버지로서 아이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고, 또 어떤 아버지로 살아가고 싶은가? 가족을 부양하고 양육에 참여하는 아버지가 좋게 여겨지는 요즘,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아이의 성장발달에 좋은 아버지 역할과 양육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 첫걸음은 아이와 친밀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함께 놀아주고 운동하며, 아이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 아이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며, 혹 아버지로서 잘못한 말이나 행동은 사과하며 소통하는 것 등은 아이와 평생 쌓을 관계의 기초가 된다. 아버지의 따스한 양육과 친밀한 관계는 아이가 스스로를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고, 학업 스트레스가 매우 높은 현실을 덜 우울하게 통과할 수 있으며, 역경을 잘 뚫고 나갈 힘이 된다. 무엇보다 이러한 아버지-자녀 관계는 훈육을 보다 효과적으로 만들어 준다.

이와 함께 아내와의 관계를 잘 가꾸는 것이 아버지 역할의 핵심적인 영역임을 기억해야 한다. 좋은 아버지로 살아간다는 것은 가족과 아이들을 위해 경제적인 부양과 양육을 위한 노력뿐 아니라 아내와의 관계를 잘 가꿔나기기 위한 헌신을 요구한다. 즉 아내와 남편이 서로의 요구와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배려하며 안식이 되는 관계를 형성할 때 아버지의 양육과 아버지 역할은 아이들에게 좋은 결실을 맺고 진가를 발한다.

아이들에게 어떤 아버지로 기억되고, 어떤 아버지로 살고 싶은지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인지를 인식하고, 아버지로 살아가는 삶에 자부심을 느끼기를 바란다.

● 글을 쓴 김성은 교수는 서울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에서 가정학을 전공하고, 도미하여 델라웨어대학교에서 가족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 브랜디와인에서 부교수 종신교수, 서울대학교에서 초빙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와 연리지가족부부연구소 연구실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 ≪좋은 아버지로 산다는 것≫, 공역서 ≪우리는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