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아버지 생각

아버지란…

1. 일반적인 의미

부계 혈족 관계 호칭
종고조 고조 / 고조모 고대고모
재종증조 종증조 증조 / 증조모 증대고모 내재종증조
삼종조 재종조 종조 할아버지(조) / 할머니(조모) 대고모(왕고모) 내재종조 내삼종조
재당숙(재종숙)
재당고모(재종고모)
당숙(종숙)
당고모(종고모)
백부, 숙부 아버지(아빠, 부) / 어머니(엄마, 모) 고모 내당숙(내종숙)
내당고모(내종고모)
내재당숙
내재당고모(내재종고모)
삼종형제자매 재종형제자매 종형제자매 형제
형(오빠), 남동생
자매
누나(언니), 여동생
내종형제자매 내재종형제자매 내삼종형제자매
재종질 종질 조카(질) 아들, 딸 조카(생질) 내종질 내재종질
삼종손 재종손 종손 손자, 손녀 이손 내재종손 내삼종손
재종증손 종증손 증손 ? 내종증손
재종현손 종현손 현손 ? 내재종현손
남자 혈족 여자 혈족
범례 이촌 삼촌 사촌 오촌 육촌 칠촌 팔촌
이동에 따른 촌수 관계 : 2촌 관계 : 1촌 관계
5대 이상의 조부 현조 내조 곤조 잉조 운조

1.1. 개요




어렸을 적 누구보다도 강했던 우리들의 영원한 슈퍼맨. 경우에 따라 영원한 빌런
하지만 항상 가족을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

남성이 아이를 가졌을 때 아이가 보는 시각에서 그 남성이 가지는 호칭이다.

대개의 동물은 아버지가 없다. 가시고기 등 일부 동물을 제외하고는 ‘아버지’라는 존재, 소임을 인지하는 동물은 찾기 힘들다. 인간에서도 즉시에 인지 가능한 ‘어머니’의 존재가 역할과 의미에서 생물적이라면, ‘아버지’는 그 의미가 비교적 관습적이고 사회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진화론적으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간의 유아는 다른 종에 비해 대단히 약하고 그 유아를 보호해 줘야 하는 어머니도 외력에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존재는 꼭 생물학적 아버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 시대를 통틀어 가족의 구성원 중에 남성성을 가지고 여자와 어린 아이를 보호하는 가장의 존재와 겹친다.

어머니가 한 가정의 안사람으로서 가족을 내조하고 안에서 운영한다면 아버지는 바깥사람으로서 외조하고 가족의 외부에서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외부의 위험(그것이 경제적인 것이든 물리적인 것이든)으로 부터 가족을 보호하는 것이 전통적인 가부장하에서의 가족의 모습이었다. 그러한 면모는 전통적인 가족상이 많이 변화한 지금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미지에 대한 원형으로 남아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는 가족 내에서는 소외되고 이해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어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가족에서 보내게 된다. 맞벌이는? 고된 노동의 시간이지만 공유하는 부분이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들, 즉 자녀들과 대단히 많고 친밀감을 쌓기도 쉽다. 하지만 아버지의 주 활동 영역은 바깥사람 답게 자신의 직장이다. 즉 대부분의 경우 이윤을 내기위한 조직인 기업에서 종사하게 되고 가족들과 공유하는 시간이 적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과 이해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자신의 직장에서 행동하는 상명하달식의 사회관계나 직장 상사로서의 위치를 가족에게도 적용하려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크고 작은 갈등의 소지가 된다. 혹은 직장에서 얻는 피로로 집안에서는 주로 휴식을 취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경우는 특별히 아버지가 나쁘다 기 보다는 구조적인 측면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크므로 이성적인 위키러라면 아버지를 이해하려 노력해보자.

예전에는 가부장제로 가정 안에서의 절대 권력자였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돈을 벌어오는 사람임으로 원천적으로 가장 강력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더해 성인 남성임으로 아들이 사춘기를 지나기 전까지는 가족 전원이 아버지에게 덤비는 막장스러운 상황이 발생해도 힘으로는 아버지를 못 이긴다. 가장 강력한 물리력의 소유자인 셈. 이런 아버지의 권력은 제우스를 제외한 모든 신이 다 덤벼도 이길 수 없다던 제우스의 강력한 권위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권력이 많이 양보되었다. 여성의 주부로서의 노동에 대한 경제적 가치도 상당히 인정되었고 지식 기반의 사회로 이행해감에 따라 교육에서 폭력을 사용할 이유도 많이 약해졌기 때문. 오히려 요즘은 때려봤자 애 기만 죽인다고 대화로 해결하려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자식(들)이 유학갈 때 어머니도 같이 가서 아빠는 혼자 한국에 남아서 돈을 버는 형태인 기러기 아빠도 많아진 실정이고 그에 따른 문제가 있다.

면접의 자기소개서에 보면 보통 대한민국의 아버지는 엄격하고 무섭다고 한다 (가끔씩 사소한 걸로 폭언을 하거나 폭행을 하는 아버지나 자신은 가족에게 잘해준 적도 없으면서 가부장적으로만 행동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아버지를 가장한 범죄자도 있는데 이건 엄격한 게 아니라 걍 성질 더러운 인간쓰레기인거다.). 고등학교 자기 소개서에서는 항상 존경하는 남성에 랭크되어 있다. 보통 사유는 ‘가정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시는 대한민국 대표가장’. 그리고 실제로 대부분이 아버지를 존경하는 이유에 이 희생정신이 들어있다. 가끔 장래희망 란에서도 보인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출생자인 아버지는 자기 자녀들과 비디오 게임같은 것을 같이 하기도 하는 등 서열만 유지한 채 반쯤 친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일부 가정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놀다가 어머니한테 들켜서 부자가 나란히 꾸지람을 듣기도 하는데 짱구는 못말려에서는 이런게 은근히 흔하게 나온다.

보통은 어머니보다 빨리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은데, 밖에서 일하시는 경우가 많고,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가 쌓여도 체면 때문에 잘 처리하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은데다가 보통 푼다고 해도 건강에 좋지 못한 수단(흡연,음주)으로 푸는 경우가 많고, 일반적으로 성별과 생활의 특성상 자기 몸을 잘 안 챙기시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러한 면을 전부 제외하더라도 생물학적 구조상 남성이 여성보다 평균 수명이 떨어지는데다가 평균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연상인 상태에서 결혼한다. 또한 아버지들은 대부분 자신이 집안의 버팀목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절대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대부분 자신이 힘든 일은 절대로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끙끙 앓으며 해결하는 경우가 잦다. 그러니까 이 항목 보는 위키러들은 아버지께 잘해드리자.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여우 같은 마누라 , 토끼 같은 자식을 위해 등골 빠지도록 일하는 사람.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아들에게는 최초이자 최대의 라이벌이기도 하다.

혹시 술 마시고 깽판부리는 막장 아버지에 대해 보러 왔다면 막장 부모 항목을 참조하자.

트라이버튼의 설문에 따르면, 2016년 6월 26일 현재, 응답자의 62.4%가 아버지를 원망하느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변했다.

1.1.1. 아버지상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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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철의 중산층 연작 중 ‘따봉’.

신학철의 《중산층 연작 – 따봉》은 시대의 요청에 따라 ‘회사인간’ 이 된 한국 가장의 현실을 조명한 작품이다. 돈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인격까지도 과감히 내다 팔고 회사의 뜻대로 온갖 재주를 다 넘는 가장. 깔끔한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근사하게 맸지만, 그것은 이를테면 서커스 원숭이의 화사한 제복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가장들이 비인간화할수록 회사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따봉’을 외친다. 가장은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자신의 비애를 슬퍼하면서도 그만큼 가족의 생존을 위해 자신이 희생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묘한 아이러니에 빠져든다. 그런 자기 최면이라도 없다면 그는 더 이상 땀을 흘리며 물구나무서기를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만성피로 증후군 유병률이 0.27%(1만 명당 27명) 로 호주나 미국, 영국 등에 비해 2~3배나 높다는 통계(연세대 의대 교수팀, 1997년 7~9월)는 그만큼 열악한 우리나라 가장들의 생존 조건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다시, 그렇게 얻은 최후의 보상은?

-《미술로 보는 20세기》9장 ‘한국의 아버지’ 중

21세기 들어 가족의 역할이나 성 역할이 급격히 바뀌면서, 많은 아버지들이 자신의 역할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과거에는 사회에서 열심히 일하고 가족을 열심히 부양하기만 해도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적극적으로 가정생활을 도우고 자녀 양육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위의 막장 아버지처럼 직접적으로 손찌검을 하거나 폭언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단순히 돈을 버는 것만으로는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2010년대 현재 미성년 자녀를 키우고 있는 대다수의 아버지들은 그 전 시대의 아버지상, 즉 가부장적이고 가족을 부양하는 역할만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새롭게 바뀐 시대에 맞는 아버지가 되는 방법을 잘 모른다. 본인은 그저 자기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뿐이고 한없는 선의로 가족과 자녀들을 대하지만, 다른 가족들이 보기에는 소극적이고 가정생활에 관심이 없는 나쁜 아버지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아버지상을 적극적으로 교육하기 위해 일부 종교단체나 시민단체에서는 ‘아버지학교’를 운영한다. 반면 이런 현상에 대해 ‘돈 벌어다주는 것도 모자라서 이젠 학교까지 다녀야 하느냐’면서 반발하는 목소리도 있어,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사람들의 가치관이 못 따라가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정확하게는 가족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의 나와 있듯 소통하지 못한 아버지를 보고 자란 세대가 아버지처럼 하면 되겠지. 라고 하나, 양성평등 의식으로 가장의 부담을 같이 공유하려 하는 여자들과 마찰을 빚게 된다.[ 그리고 장기화 된 경기침체로 맞벌이가 대세로 보이고 있다. 그러니 가족과 대화를 나눠 고통과 고민을 분담하는 것이 좋은 아버지가 되는 길이다. 설사 맞벌이가 아니라고 해도 고통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니, 고민을 말하고, 같이 방법을 찾는 것이 좋은 아버지가 되는 길이다.

1.2. 언어별 명칭

전부 그렇지는 않지만 대단히 많은 언어들이 어머니는  발음이 들어가는 말로 부른다면, 아버지는  발음이 들어가는 말로 부른다. 모두 양순음이자 파열음. 양순 비음인 ㅁ 다음으로 가장 발음하기 쉬운 음이고, 이 발음이 없는 언어는 거의 없다.

한국어로는 아버지, 아빠, 아버님(내가아닌 타인이 부를때), 아부지(경상), 아방(제주), 아바이
영어로는 Father, Dad, Daddy, Papa
한자로는 父, 阿父
중국어로는 爸爸(bàba)
일본어로는 お父さん(お-とう-さん), 父(ちち), 父親(ちち-おや), 親父(おや-じ)[7], 父上(ちち-うえ)
히브리어로는 [8] אב
아랍어로는 Abu (أبو)
그리스어로는 pateras (πάτερας)
라틴어로는 pater
보스니아어로는 Otac
독일어로는 Vater, Vati (유아어)
스페인어로는 Padre
프랑스어로는 Père
터키어와 스와힐리어로는 Baba
말레이인도네시아어로는 Ayah 또는 Bapa
네덜란드어로는 Vader
러시아어로는 Отец, Папа, Папка, Папочка
게르만 언어 공통으로 Papa
에스페란토로는 Patro

1.3. 창작물

1.4. 참고 항목

  • 동화에서 사용되는 단어의 뜻
  • 아버지 살해
  • 아빠!어디가?

1.5. 관련 어록

There are no perfect fathers.
이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아버지는 없습니다.
But a father will always love perfect.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언제나 완벽합니다.

– 태국의 한 보험 광고 문구

아버지가 되는 일은 쉬워도 아버지답게 되는 일은 어렵다.

ㅡ 미국 격언

안 아파
못 아파

ㅡ 하상욱 시 아빠 중

4살 때, 아빠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
5살 때, 아빠는 많은 걸 알고 계셨다.
6살 때, 아빠는 다른 애들의 아빠보다 똑똑하셨다.
8살 때, 아빠가 모든 걸 정확히 아는 건 아니었다.
10살 때, 아빠가 어렸을 때는 지금과 확실히 많은 게 달랐다.
12살 때, 아빠가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빠는 어린 시절을 기억하기엔 너무 늙으셨다.
14살 때, 아빠에겐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아빤 너무 구식이거든!
21살 때, 우리 아빠 말이야? 구제불능일 정도로 시대에 뒤쳐졌지.
25살 때, 아빠는 그것에 대해 의외로 좀 알고 계시고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내놓으신다. 뭐 오랫동안 그 일에 경험을 쌓아 오셨으니까 그 정도쯤은 아시는 거겠지만.
30살 때, 아마도 아버지의 의견을 물어보는것도 큰 도움이 될것 같다. 아버진 경험이 많으시니까.
35살 때, 아버지께 여쭙기 전에는 난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40살 때, 아버지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버진 그만큼 현명하고 세상 경험이 많으시다.
50살 때, 아버지가 지금 내 곁에 계셔서 이 모든 걸 말씀드릴 수 있다면 난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분이셨는가를 미처 알지 못했던 게 후회스럽다. 아버지로부터 더 많은 걸 배울 수도 있었는데 난 그렇게 하지 못했다.

– 앤 랜더스, <나의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 내가 보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산이었습니다.
지금 제 앞에 계신 아버지의 뒷모습은
어느새 야트막한 둔덕이 되었습니다.
부디 사랑한다는 말을 과거형으로 하지 마십시오…

– 인순이 <아버지>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한 유리로 되어있어,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의 일상은 아들의 신화가 되는 거야.

– 후치 네드발, 드래곤 라자

대신 일 할 사람은 있어도 대신할 아빠는 없으니까.

– 짱구는 못말려의 짱구 아빠 신형만

어릴 적 우리 집엔 슈퍼맨이 살았다. 그는,
세상 고칠 수 없는 물건이란 없는 맥가이버였고,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일이 생기면 나타나 모든 걸 해결해주는 짱가였으며,
약한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히어로 중의 히어로였다.
하지만 철부지를 벗어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다만 들키지 않았을 뿐 슈퍼맨도 사람이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꼽고 슬프고 무섭고 힘겨운 세상들이 아빠를 스쳐갔는지를.
그리고 이제 간신히 깨닫는다.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꼽고 슬프고 무섭고 힘겨워도 꿋꿋이 버텨낸 이유는,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음을,
가족이 있었고 내가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다른 누구도 아닌 아빠의 이름으로 살아야했기 때문이었음을.

응답하라 1988의 성보라의 나레이션

사랑한다, 짐. 넌 내 아들이고, 널 항상 사랑할 거란다.
그리고 이 말을 덧붙이고 싶구나. ‘널 항상 자랑스러워 할거야.’ 하지만 솔직히 더 이상 그 말은 할 수가 없단다.
넌 어두운 길을 걷고 있다, 짐. 네가 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고, 존중할 수 없는 길이지.
우린 널 사랑한단다, 하지만 네 돈은 받을 수 없다. 그건 피묻은 돈이야, 아들아, 넌 그렇게 자라지 않았어.
네게 했던 말 기억하니, 아들아?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대로 되어가는 법이다.
태생이 어떻든, 환경이 어떻든, 사람을 만드는 건 그의 선택이다.
비록 지금, 용납할 수 없는 어두운 길을 걷는 것을 선택했지만 사람은 단 한 번의 생각, 단 한 번의 결정으로 그의 인생을 뒤바꿀 수 있다.
넌 항상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잊지 말거라.

– 스타크래프트의 등장인물인 짐 레이너의 아버지, 트레이스 레이너가 아들에게 남긴 영상 편지. 사실상의 유언이다.

널 내가 낳았구나

– 쌍취헌 권철(1503~1578)

이야, 슈퍼히어로들에게 아버지의 날은 정말 뭣같겠어.

– 솔직한 예고편

내 아들 휘재야 사랑한다.
어릴때 목욕 한번 데려가지 못해 미안하다.
내가 성치 못해서 미안하다.

-연예인 이휘재의 아버지께서 쓴 편지

아무것도 모른체 내 품에서 딩굴거리는 새끼들의 장난때문에 나는 산다. 힘들어도 간다.여보 얘들아 아빠 출근한다.

-싸이 <아버지>

아들아, 네가 태어나던 날 온 로데론이 네 이름을 속삭였단다….… “아서스.”
내 아들아, 정의의 수호자로 자란 네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아느냐?
명심하거라, 우리 가문은 늘 힘과 지혜로 왕국을 다스렸음을.
또한 네가 그 강한 힘을 신중하게 사용하리라 믿고 있음을.
하지만 아들아, 진정한 승리란 백성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란다.
기억하거라, 나의 시대가 끝나는 그날 너는 왕이 되리니.

테레나스 메네실이 아들 아서스 메네실에게

아버지라는 것들은 말이야…
외롭다거나 힘들다는 말 같은거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고 할 필요도 없거든

덴마 첫 에피소드 파마나의 개에서

”참지 말고 울어도 돼
창피한 거 아니니까.”

-다스 베이더

2. 종교에서의 아버지

각 종교에서 절대자를 이르는 말. 대부분의 종교가 남성중심의 가부장 문화에서 발달했기 때문에 이렇게 지칭한다. 기독교의 페미니즘 신학에서는 ‘하나님 아버지’ 대신 ‘하나님 어머니’로 부르자는 목소리도 있다[15]. 물론 절대자에게 성 따위가 있을 리 만무. 아버지든 어머니든 틀리기는 마찬가지라는 소리다. 사실 성별이 아니라 속성(?)이 아버지라는 말도 있다.

하나님 앞에서 진짜 아버지를 이라 부르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일요일 날 친구들과 놀러 나가려는 어린 아들을 아빠가 억지로 교회에 데리고 갔다. 아들은 교회의 예배문화가 낯설기만 했지만 아무튼 아빠가 하는 대로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가 기도를 하면서 연방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며 무언가 간절히 호소를 하자, 영리한 아들은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하나님 할아버지….”라며 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아빠가 “교회에서는 너도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거야.”라고 귀띔해주자 아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럼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아빠에게도 아버지고 나에게도 아버지야?”라고 되물었다. 아빠가 “그래. 그렇게 하면 돼. 우리 아들 역시 똑똑하구나.”라고 칭찬을 했는데, 한참 생각을 하던 아들의 대답은 “알았어, 형!”

굳이 절대자가 아니더라도 기독교 특히 가톨릭에서는 성직자를 아버지로 많이 부른다. 신부를 부르는 다른 명칭이 father인 것은 물론이고 초대교회 당시 기독교의 기틀을 세운 사람들을 교부(Church fathers)라고 부르며, 베네딕토 회의 수도원장인 “아빠스”(abbas/abbot)는 아버지를 뜻하는 아람어 av(아버지) 또는 abba(나의 아버지)에서 유래한 단어이고 교황(pope)도 그리스어 pappas(아빠)에서 온 단어이다. 교황의 라틴어 표기는 아예 대놓고 papa이니 말 다했다.

그래서 다른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에서는 하느님보다 대통령이 위라고 하는 말도 있다. 하느님은 아버지 대통령은 할아버지이므로.

3. 대한민국 국군에서의 아버지

후임 입장에서 정확히 1년 선임(ex: 13년 12월 – 14년12월)을 말한다. 아들항목 참조.

4. 학문계에서의 비유적인 표현

~~학의 아버지라는 표현은 대개 그 학문의 기초를 닦았거나 중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을 일컫는다. 대표적으로 유전학의 아버지인 멘델, 물리학의 아버지인 뉴턴 정도를 들 수 있다.

5. 김정현의 소설

췌장암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IMF라는 사회적 배경과 맞물려 엄청나게 많이 팔렸다. 후속 작으로 어머니도 있는데… 이건 영…

5.1. 줄거리

어렵게 공무원이 되었지만, 연과 줄이 없어 승진에서 번번이 누락되는 정수. 어느 날부터인가 아내와는 자연스레 각방을 쓰게 되고, 일로 바빠 아이들과의 사이도 멀어진다. 그러던 중 정수는 친구이자 의사인 남 박사로부터 자신이 췌장암 말기라는 말을 듣는다. 사실을 모르는 딸과 부인은 술에 의지하게 된 정수에게 실망하고, 정수는 점점 더 외톨이가 되어간다. 결국 현실을 수긍한 정수는 자신의 죽음 이후 남게 될 가족을 걱정하며, 마지막까지 어엿한 가장이고자 하는데….

5.2. 등장인물

  • 한정수 – 주인공. 영신의 남편이자 희원, 지원의 아버지.
  • 영신 – 한정수의 아내. 남편이 술마시고 들어오는 일이 잦아지자 작중에 사는 아파트로 이사한 뒤로는 각방을 쓰고 있다.
  • 한지원 – 한정수의 딸. 서울대를 다니고 있다. 정수와 주된 갈등을 빚는 인물 중 하나.
  • 남 박사 – 한정수의 친구. 직업은 의사. 우연찮게 건강검진을 해줬다가 췌장암을 발견해 한정수에게 알려주게 된다.
  • 이소령 – 일식집에서 일하는 20대 여성. 한정수가 작중에 극도의 소외감을 느끼다가 만나게 된 애인.
  • 장변호사 – 한정수의 친구.
  • 한희원 – 한정수의 아들. 지원과는 달리 이쪽 비중은 공기에 가깝다.

5.3. 기타

핵가족화가 화두로 떠오르며 논란이 되던 1996년에 발행된 소설로 이듬해 발생한 외환위기와 겹치면서 엄청난 이슈가 되었던 소설이다.

현대 사회에서 아버지들이 겪는 고민들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내용과, 이제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게 된 암으로 인해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 가장의 마음을 담담하게 펼쳐나간다. 암이라는 사실에 절망하고 괴로워하지만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자신의 사후에 남게 될 가족을 위해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족들이 다 알게 되고[16] 난 후 병원에 입원하게 되나 암으로 인해 초췌해져가며 고통 받는 자신과, 그런 자신을 보며 슬퍼하는 가족을 생각하며 남박사에게 안락사를 요청하게 된다.

하지만 췌장암이 드러나자 가족에게 알리기는커녕, 요정에 가까운 일식집에 출입하며 젊은 여자(이소령)와의 연애에 탐닉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그걸 정당화[17]하고 미화하는 내용은 불륜을 정당화 하는 것 같아서 상당히 기분 나쁜 부분이기도 하다.

6. TBC의 교양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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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소재로 한 다큐 프로그램, 일요일 아침 7시 20분(본방), 월요일 저녁 6시 20분(재방)에 방송된다.

‘이 시대 아버지의 존재와 역할은?

“가정생활을 하면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잘하지 못한 부분들을 아버지학교에서 배우는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아버지들에게 꼭 이 학교를 권하고 싶네요”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어 양산가족상담센터에서 운영하는 아버지학교를 찾은 김호철(양산시 동면)씨의 말이다.

‘아버지의 올바른 역할은 무엇이며 자녀들에게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가?’ 요즘 아버지들은 자신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부쩍 관심과 고민이 많다. 이에 따라 아버지학교는 아버지의 존재를 돌아보고, 그 역할을 보다 잘 수행하기 위한 방법을 배워 가정을 보다 행복하게 이끌고 가족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아버지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 4월 2일부터 5월 21일까지 8주에 걸쳐 매주 수요일 수업을 진행한다.

1·2주차와 6·7·8주차에는 ‘이 시대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 ‘우리는 부부’ 등을 주제로 아버지의 위상을 재조명하고 존재를 발견하는 시간을 갖는다. 3·4·5주차에는 ‘또 다른 이름 부모’라는 주제로 부모역할의 개념과 유형을 알아보고, 자녀의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법과 의사소통의 기술을 안내함으로써 자녀의 꿈과 비전을 이해하도록 한다.

그리고 ‘부부의 날’에 맞춰 열리는 마지막 8주차는 수강생들이 자신의 아내를 초대하여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 보는 시간이다.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 등 깜짝 파티를 통해 아내와 공감하는 시간과 함께 수료식을 갖는다.

아버지학교에 참여한 고병훈(양산시 동면)씨는 “6살짜리 아들이 있는데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찾았다”면서 “교육을 받고 아이와 아내에게 좋은 아버지와 남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양산가족상담센터 관계자는 “처음 개설한 아버지학교에 아버지들의 호응이 너무 좋다”며 “퇴근하고 저녁에 수업을 받느라 힘들텐데 다들 너무 진지하고 열정적”이라고 전했다.

아버지, 그 먹먹한 이름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으면서 제일 안쓰럽고 초라해지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중에서도 성별로 따지자면 남성이 아닐까. 가정에서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던 가장이 은퇴로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고, 나이가 들어 체력까지 떨어지는 걸 보면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다. 자식들이 알고 있는 이기문명을 쫓아가지 못하는 것을 볼 때는 면 더 그렇다.

아버지는 엄마처럼, 가족 구성원들의 세세한 부분을 다 꿰뚫고 있을 만큼 오지랖이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천성적으로 가족에게 살갑게 다가가 친밀하지도 않다. 숭고하고 거룩하다고까지 비유되는 ‘모성애’에 비해 ‘부성애’는 별로 얘기조차 되지 않는다. 요즘 들어 엄마와 또 다른 ‘아빠효과’ 대한 연구가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30~40대 이상 세대에게 가정 내에서 아빠의 존재 혹은 부성애는 낯선 이름 그 자체다.

그래서 오로지 가족을 먹여 살리며 그것만으로도 존재감을 인정받던 아버지가 그 역할을 내려놓게 되면 따라오는 감정들. 스스로 느끼는 자괴감과 그를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이 느끼는 안쓰러움은 참 우리를 민망하게 만든다. 젊은 시절 뼛골 빠지도록 일하며 자식들 먹여 살렸더니 이젠 쓸모없는 사람이 됐다고 홀대받는 신세가 된 아빠라는 존재. 엄마처럼 자식들과 친하지도 못하고, 감성적이지도 못하고, 표현도 서툴기에 늘 가족 하나하나와 거리감이 있기 마련이다.

아빠가 바깥일을 하면서 어떤 어려움과 설움이 있는지 그리고 얼마큼 우리를 위해 애쓰는지를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기에 그 감사함도 제대로 발현되기 어렵다. 그리고 나이 들어 은퇴로 가정에 돌아오면 그의 자리는 없다. 가정 내에서의 역할이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뒤늦게 가정 내의 역할을 찾는 아빠는 어색해 어쩔 줄 몰라 한다. 아빠에 대한 고마움, 미안함, 애틋함은 있는데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는 자식들. 그런 어색한 관계가 얼마나 많은지…. 가정에서의 기여도만큼 보상받지 못하는 가장, 우리의 아버님들..

모성애, 여자의 한, 어머님의 헌신 등을 다루고 이해하고 어루만지는 글과 말들은 많이 있지만, 아버지의 한, 설움, 소외됨 등을 다루고 어루만지는 글이나 말들은 흔하지 않다. 그만큼 표현하지 않는 것에 익숙한, 그래서 더 안쓰러운 우리 아버지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세상 다른 아버지의 어깨는 안쓰러워하며 공감하면서, 정작 내 아버지의 뒷모습에 가슴 아파했던 적은 얼마나 있었나. 아버지의 어깨가 더 처지기 전에 안마 한 번 해드리자. 아마 평생 안 해본 사람도 많을 거다. 나를 비롯해서…

가족내 ‘아버지’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불쌍한 한국의 아버지
어머니와 달리 소외받는 존재 “아버지”
집안에선 귄위 세우지만, 사회에선 찬밥
신경 쇠약으로 정신병원까지 입원한 아버지
아버지는 가족에게 <그림자>와 같은 존재

한국의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어졌다.

나의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한국사회에서 어머님의 무한하고 자상하신 사랑이야 너무나 당연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뒷전에 놓인 듯한 우리 한국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예전에는 아버지가 부끄러워 아버지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나눠도 꺼리낄 것 없어서 한자 적어 본다.

혹자는 한국의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고 한다. 사회에서는 뼈 빠지도록 일하지만 사실 제대로 인정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집안에서는 외부에서 받는 차가운 사정을 차마 말 못한다. 오히려 큰소리 치며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권위를 띄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년에 이르러서는 아내나 아이들로부터도 사랑 받지 못하고 가족의 울타리 밖에서 겉도는 경우가 많다. 노년에는 자식들로부터도 제대로 인정을 못 받게 되는 것이 우리네 한국의 아버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으로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을수록 더욱 더 초라해지는 경우가 많다.

어린시절, 아버지에 대한 추억 “저렇게 안 되었으면 하는 롤 모델”
사람들에게 있어 ‘아버지’는 어떤 이미지로 남아있을까? 나에게는 어떤 모습일까?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옛적의 아버지 모습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떠오르지는 않는다. 다만 유년시절에 무척 엄한 분이었다고 생각된다. 좀 더 솔직히 말해 내 기억에는 ‘아주 무서운 사람’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대략 6~7세 정도가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아버지의 모습으로 생각된다. 아버지는 주사가 심하신 분이었다. 술만 드시면 어머니를 닥달하시곤 했다. 평소에는 인정스럽고 순하신 분이셨다. 하지만 술만 드시면 밤에는 난폭자로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렸을 때는 그것이 너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나는 크면 ‘결코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거야’라는 다짐을 하곤 했다.

(임진각에서 북녘땅을 바라보고 계신 아버지, 지나온 인생이 한없이 후회스럽기도 하다고 하신다. 과거에 대한 후회로 극도로 신경이 쇠약해져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받기도 했다. 아버지 당신도 한 남자였음을 왜 미쳐 몰랐던가. 아버지는 미워해야 될 대상이 아니라 이해받고 사랑 받아야 될 존재이다.)

귀하게만 컸던 아버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
아버님의 본관은 ‘하동’이고 고향은 ‘경남 함양’이었다. 외동이셨는데, 아버님의 생부가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버지는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큰아버님의 종손으로 입적되셨다. 또한 아버님의 생모도 일찍 돌아가셨다. 그 바람에 나는 한번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제대로 보지도 그리고 듣지도 못했다. 단지 큰 할머니의 따뜻한 미소와 젓가슴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

아버지는 생부와 생모를 일찍 떠나보내셨다. 하지만 종손으로서 부유하게 성장하셨다. 유모도 있었고, 아버님을 돌봐주는 하인들까지 별도로 있을 정도였다. 모든 면에서 풍족하셨다. 그래서 굉장히 귀하게 크셨다. 일부 친지들은 너무 귀하게 커서 세상 물정을 모르고 성장했다고 말하신다. 덕분에 사회물정을 잘 모르셨던 모양이다.

반면 아버님의 하인으로 일하셨던 분중에 한 분은 중견 그룹의 사장이 될 정도로 아주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 분이 아버지 어려울 때 도와주신다고 찾아오신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아주 어렸을 때 들은 기억이 있다.

아버님 인생의 첫 실수 – 대학 포기

아버님은 남성다우시면서도 순진하고 여린 구석이 있었다. 온순하면서도 울컥하시는 성질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분이셨다. 아버지 세대분으로서 당시에 대학을 다닌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다. 단순히 머리가 좋아서 될 일이 아니었다. 부유하던지 아니면 부모가 지식에 대한 욕구가 아주 강하든지 둘 중 하나는 되어야 했다. 사실 돈 없으면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 그 당시 대학이었다.

돈이 있었기에 아버지는 대학을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들어갈 대학을 들어가지 못했다. 읍내로 가다가 만난 친구에게 돈을 사기 당한 것이다. 그 친구가 대학에 등록금을 내러간다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는 아버지의 등록금을 훔쳐가 버린 것이었다. 만일 아버님이 그 당시에 대학만 들어가셨더라도 모든 상황이 상당히 바뀌었을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지식인으로서 사회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셨을지도 모르겠다.

아버님은 그 친구를 꽤씸히 여겼다. 하지만 크게 게의치 않으셨다. ‘대학교는 운명이 아닌가보다’ 생각하시고 대학을 포기하셨다. 그것은 문제였다.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내시다가 군대를 가셨다. 일반 병사로 들어가셨다가 직업 군인으로 전환하셨다. 13년간 군대 생활을 지속하셨다. 하사관으로 직업군인 생활을 시작하셨다. 장교로 전환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아버님은 거절하셨다. 그것 역시 잘못된 선택이었다.

잔고가 빈 통장만으로 어머님과의 결혼 성공
여하튼 그렇게 아버님은 군생활을 시작하셨고, 군 생활 중에 지금의 어머님을 만나셨다. 어머님과의 결혼도 일종의 사기(?)였다. 어머니에게 직접 구혼을 몇번 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그러자 당시 부산일보 기자를 하시던 큰외삼촌을 붙들고 사정사정 매달려 결혼에 성공했다.

어머님은 오빠의 권유로 다시 아버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키182cm의 훤칠한 키에, 수려한 인물, 그리고 순수한 행동 등이 여자를 사로잡기에는 매력이 있으신 분이었다. 어머니 역시 어느 정도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통장을 가지고 있다는 말에 신뢰감을 느꼈다. 통장을 가졌다면 적어도 성실한 사람이라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어른들의 뜻에 따라 결혼을 하셨다고 한다.

(당시에 통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통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곧 알뜰하게 저축을 하는 사람으로 평판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시대였다.) 

당시에는 아내가 남편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었던 그런 시대였다. 그래서 아버님의 눈썹사이에 있는 상처도 3년 후에나 잠자는 모습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알았다고 한다. 그 정도니 남편에게 대든다는 것은 거의 상상하기 힘든 시대였다고 한다.

여하튼 어머니는 결혼후 재정관리를 위해서 아버님께 저축 통장을 보자고 하셨다. 아버지는 ‘결혼 전에 당시이 나를 싫다고 해서, 당신 따라다니느라 속상해서 술로 모든 돈을 다 탕진했다.’고 하셨다고 한다. 어머님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때는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결혼 전에 이렇게 상대를 속이는(?) 일이 종종 있는 것 같다. 내 친구 중에 하나도 지금의 아내가 당시에 자신을 떠날 것 같아서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친구: ‘내가 말 안할려고 했는데, 사실 땅이 있는데,,,’
친구애인: …(속생각, 으아, 이 어려운 시대에 땅이 있다니. 대단한 사람인 걸)

결혼후 친구 와이프가 ‘땅이 어디 있어요?’라고 묻자 ‘땅은 무슨 땅, 세상이 다 내땅이지~’라는 엉뚱한 말을 듣고 황당했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들은 그렇게들 어머니를 속이고 결혼을 하신 것일까? 나도 그랬었나? 기억 없음 ㅎㅎ*^^*

인생 최대의 아픔, 두번째 실수 – 지나친 강직성과 불명예 제대
아버지는 그렇게 결혼후 첫아이였던 형님을 낳고 돌이 지나자마자 월남으로 참전하셨다고 한다. 당시 월남용사들은 누구에게나 인기 있는 최고의 직업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보급 부대 창고장이었으므로 아버지의 끗발도 아주 센 편이었다. 휴가차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은 모두 보급 부대를 들려서 군수품을 부탁했다. 아버님은 그런 분들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봐서 거저 주었다. 하지만 보안부대니 헌병이니 장교니 하면서 힘을 쓰는 사람들이 요구할 때는 오히려 더 철저하게 군수품을 나눠주지 않았다.

이에 앙심을 품었던 사람들은 아버지를 표적으로 삼았다. 한 보안대 상사의 밀고로 군수품을 빼돌리던 부하의 죄를 아버님이 책임지게 되었다. 이로인해 불명예 제대까지 당하시게 되었다. 아버지에게 닥친 젊은 날의 가장 큰 불행이었다. 아니, 아버지 인생에서 가장 오욕에 남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셨다. 자신에게 오명을 남긴 상사를 죽일 것이라고 날마다 칼을 갈았다. 칼을 들고 월남전 용사들이 돌아오는 인천 앞바다에 날마다 죽치고 앉아서 기다렸다.

인생의 세번째 실수 – 변화를 추구하지 못했던 인생
그렇게 술어 절어사셨다. 알콜 중독 수준이었다. 당시의 치욕에 분노하며 수년간을 폐인처럼 사셨다. 그 이후로도 10여년간 제대로 된 직장도 다니지 않으셨다. 이후 하시는 사업마다 실패를 거듭하셨다. 조그만 직장이라도 들어가시면 좋았으련만 남의 밑에서 생활하기 싫어하셨다. 덕분에 정상적인 직장을 한 번도 다니지 않으셨다.

나름대로 노력도 많이하셨다. 하지만 흔들리는 나약한 의지로 실행 부분에서 실수를 자주 범하셨다. 한번은 10여명의 이발사를 두고 큰 이발관도 운영해보신 적이 있었는데 재정관리를 안하셨다. 직원들만 믿고 밖으로만 다니시다 결국 망하셨다. 그 정도로 사회 물정을 제대로 모르셨다. 어머니가 한푼두푼 모으셨던 돈도 밑빠진 독에 물붙기 식으로 그렇게 빠져나갔던 것이다.

결국 빈번한 사업실패로 한 푼의 돈도 없이 빈털털이가 되어서 어머님의 외가쪽 밭을 빌려 일하는 농부가 되셨다. 사실상 소작농이 되신 것이었다. 소작농을 부리시던 거부가 초라한 소작농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 이후에도 역시 몇 번의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아버님은 번번이 실패하셨다. 어머님의 고생은 더욱 심하셨다. 그렇지만 아버님의 폭정은 50대가 되어서도 계속되었고 환갑이 다되어서야 겨우 수그러져지셨다.

자식에게 조차 사랑 받지 못했던 아버지
평소에는 멀쩡하셨다. 하지만 늘 술독에 빠진 듯이 사셨다. 밤에 돌아오시면 주사를 한번씩 심하게 하셨다. 아버님의 투정을 어머님은 다 들어주셨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지 못하고 잠자고 있는 우리들을 깨우거나 하는 것을 늘 염려하셨다.

하지만 아버님은 취기로 잠들어 있는 형과 나를 늦은 밤에도 깨우곤 하셨다. ‘내가 너희들 애비다~’ 한마디 툭 던지고 말대꾸를 하면 화를 내시기도 하였다. 형님은 성격이 여성적이어서 감히 아버님에게 대항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특히 어머님을 못살게 굴 때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비록 힘은 없지만 두 손으로 막고 대항을 했다. 내가 어리기에 더 함부로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손찌검을 당한 적은 거의 없었다. 사실 어머님에게도 손찌검을 하는 경우는 없으셨다.

그렇지만 나는 술주사가 심한 사람을 가장 싫어하게 되었다. 또한 비록 내가 유순해 보이지만 옳지 못한 일이라면 상사를 막론하고 굉장히 강력하게 대항하는 주장을 펼치곤 하는 기질을 가지게 되었다. 덕분에 가끔씩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래키기도 하였다. 아마 어릴 때 생긴 기개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렇지만 형님은 성장할수록 아버님을 노골적으로 싫어하셨다. 아버님을 회피하셨다. 아버님은 그렇게 자식으로부터 한번도 제대로 이해받거나 사랑받지 못하시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자식들과도 서먹서먹해지면서 아버님의 기세도 세월이 감에 따라 조금씩 누그러들기 시작했다.

신경이 쇠약해져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버지

환갑이 지나시고 아버님은 극도로 신경이 쇠약해지셨다. 육체적으로 기운도 한풀 꺽이셨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극도로 약해지시는 것이었다.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다. 악몽에 지독하게 시달렸다. 심지어 헛것에 시달리시기도 하시는 경우가 많아졌다. 눈을 뜬 대낮에도 과거가 후회스러워 술을 마셔야만 되었다. 진정이 될 수 없었다.

급기야 1999년 11월 정신병원으로 입원까지 하게 되셨다.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는 가족들의 의견에 따라 아버님의 동의하에 입원을 하시게 된 것이다.

어머님의 수술로 인한 2달간의 입원 이후에 아버님의 연이은 입원은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일반적인 건강문제 때문이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 더욱 더 충격적이었다. 정신병원이라 면회시간도 제한이 많았다. 어느 날 병문안을 갔다가 나약해지신 아버님의 몰골과 말투에 눈물이 울컥했다. 차마 아버지 앞에서 울지 못하고 화장실에 뛰어들어갔다.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목놓아 울고 말았다. 울음이 그치지 않아서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이대로 불효하다가 두 분 모두 저 세상으로 보내겠다 싶었다. 그해 12월 지금의 와이프에게 청혼을 하였다. 와이프는 한참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선택이 내가 잘한 일 중에 하나가 되었다. 여하튼 정말이지 내 결혼식 후 아버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금씩 건강해지셨다. 칠순이 지나서도 일을 나가실 정도로 건강하신 편이다.

가족이 모두 함께한 아버님과의 한풀이
아버님의 칠순 때였다. 회갑도 제대로 못한터이라 잔치라도 호텔에서 벌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극구 반대하셨다. 그래서 어른들끼리 제주도라도 보내드릴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것 역시 거절하셨다. 조촐한 가족여행을 원하셨다. 그래서 경주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그날 오후에는 경주 시내를 관광하고 저녁에는 유명한 암소갈비집에서 식사도 같이 하였다. 그렇게 밤에 콘도를 들어와서 생신 축하 파티를 하였다. 케익 절단후에는 가족별로 선물 증정이 있었다. 그리고 와이프와 내가 아버님께 편지를 드렸다. 사실 난 그 때 캠코더로 촬영중이어서 아버님의 눈물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나중에 와이프가 ‘아버님, 행복해서 우시는 것 같더라!’라고 말해서 알게 되었다

아버지에게 들은 최고의 칭찬 “이젠 더 오래 살아야되겠다!”

“내가 전에는 빨리 죽어야지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너희들 결혼하고 잘 살아가고 있고 또 아이들 커가는 것 보니, 이젠 더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젠 더 오래 살아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젠 더 오래 살아야겠다.”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귓전에서 계속해서 울렸다. 나에게 지금까지 해주신 너무 너무 큰 최고의 칭찬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음 한켠에 묵직하게 남아있던 아버님과의 한을 푼 자리가 아니였나 생각되었다.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 뜻깊은 가족여행이었다.

우리의 아버님은 이렇게 작은 정성에도 감동하시는 것이다.

나를 기다리며, 달력에 내가 나오는 휴가일에 빨간줄 긋던 아버지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휴가 나올 때마다 달력에 빨간 표시가 있는 것을 보고 궁금했었던 적이 있었다. 어머님에게 이 표시가 무슨 표시냐고 물어보았다. ‘응, 그건 아버지가 네가 휴가 나올 날짜를 미리 표시해 놓은거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 말 한 마디 안하셔도 그렇게 자식을 말없이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아버지도 결국 이해받아야할 하나의 존재다!
대한의 아버지들은 대개 그렇지 않을까. 내 아버지에게도 그렇게 말로 다하지 못하는 큰 사랑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다소 무뚝뚝하지만 그래도 아내와 자식에 대한 사랑은 한없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수많은 대한의 아버지들은 나름대로 성실히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사회적 여건이 뒷바침되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사회로부터도 가족으로부터도 제대로 이해받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자식은 자식대로 부모에 대한 한을 가지고,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에 대한 한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다들 그렇게 성인이 되어서도 가슴속에 묻혀있는 한을 풀지 못하는 있는 경우가 있다. 가족간에 묵힌 한을 풀 필요가 있다.

우리 민족은 특히 한이 많은 민족이다. 신분으로, 가난으로, 학력으로, 배고픔으로, 집없는 설움으로, 영적으로, 못배움으로, 천한 직업으로, 가족으로, 지방이라서,,,등등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없었던 삶으로 응어리진 일이 많다. 그래서 한이 많은 민족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자신의 아픈 기억들을 하나씩 드러내서 적어봄으로써 무의식속에 남아 있던 한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한풀이가 때로 필요하다. 내 아버지에 대한 기억처럼…

아버지 인생을 돌이켜보면 누구보다 열심히 살려고 애썼으나 사회로부터, 가정으로부터 소외받아 오지 않았나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내 아버지로부터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의 모습이 투영된다.

어머니가 태생적으로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아버지는 태생적으로 소외받기 쉬운 존재라는 것을 아버지가 된 지금에서야 새삼스럽게 느낀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가족에게 있어서 그렇게 <그림자>와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다. 보이지는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될 존재. 나도 그렇게 그림자가 되어가고 있다.


가족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랑 받고 싶어하셨던 인정 많으신 아버님이 오늘 문득 더 그립다.

불효자식이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이의 마음속 깊이 새겨지는 아버지의 존재

아이의 마음속 깊이 새겨지는 아버지의 존재

전철 플랫폼에서 아버지와 뒷모습이 비슷한 분을 발견하고,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분은 아버지처럼 몸이 좀 야위었고, 뒷짐을 지고 있었으며, 아버지의 것과 비슷한 모자를 쓰고 점퍼를 입고 있었다.

글 김성은(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연리지가족부부연구소 연구실장) 사진 홍경택(스튜디오100)

 

‘아버지가 여기 오실 일이 없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나 아버지를 뵐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그분을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가 아니었다. 순간 아버지 모습도 제대로 못 알아보는 딸이라는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분에게 향한 발걸음은 내 마음속에 늘 자리 잡고 있는 아버지와 시간을 많이 갖지 못한 아쉬움과 최근 들어 더욱 야위고 약해지는 아버지에게 잘해 드리고 싶은 마음의 발로였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편찮으신 곳이 늘어 점점 야위어 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지금까지 내 삶에서 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는지 자꾸 생각한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미성숙할 때는 아버지의 사랑과 존재가 나를 지탱하는 큰 힘이었음을, 매일을 힘차게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었음을 잘 인식하지 못했다. 마치 공기와 같은 아버지의 존재는 혹 사라지면 나의 생존과 안녕이 위협받는데도,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 소중함을 잘 몰랐다. 하지만 가족을 부양하고 책임지는 것이 무엇이고, 자녀가 느끼는 부모의 의미와 중요성을 피부로 체감하면서 아버지를 새로이 바라보았다. 가족을 위해 세월을 이기며 마음과 힘을 다해 살아온 아버지의 삶을 깊이 있게 느낀 것이다.

더불어 아버지의 존재를 당연히 여기던 마음 또한 사라져 갔다. 비록 서로에게 완벽한 아버지와 딸은 아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아버지가 계신 것에 감사하고, 힘들 때마다 힘이 되어 주신 아버지의 존재가 소중하다. 젊을 때와 달리 많이 약해진 아버지 모습에서 지난 세월동안 우리 가족에게 힘이 되어준 그 삶에 대해 애잔함마저 느낀다.

내가 아버지와 나의 관계 그리고 아버지의 존재를 되새기는 것처럼, 장성한 자녀들이 자신들의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 아버지가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자주 접한다. 깊이와 모양은 달라도, 나는 어린 자녀들이 아버지의 존재를 마음속에 새기는 것도 본다. 아버지가 내 곁에 얼마나 있어 주는지, 나와 얼마나 놀아주는지, 내가 힘들 때 얼마나 고민을 말할 수 있는지, 엄마랑 얼마나 싸우는지, 나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나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등 아버지를 느끼고 안다.

아버지로서 아이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고, 또 어떤 아버지로 살아가고 싶은가? 가족을 부양하고 양육에 참여하는 아버지가 좋게 여겨지는 요즘,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아이의 성장발달에 좋은 아버지 역할과 양육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 첫걸음은 아이와 친밀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함께 놀아주고 운동하며, 아이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 아이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며, 혹 아버지로서 잘못한 말이나 행동은 사과하며 소통하는 것 등은 아이와 평생 쌓을 관계의 기초가 된다. 아버지의 따스한 양육과 친밀한 관계는 아이가 스스로를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고, 학업 스트레스가 매우 높은 현실을 덜 우울하게 통과할 수 있으며, 역경을 잘 뚫고 나갈 힘이 된다. 무엇보다 이러한 아버지-자녀 관계는 훈육을 보다 효과적으로 만들어 준다.

이와 함께 아내와의 관계를 잘 가꾸는 것이 아버지 역할의 핵심적인 영역임을 기억해야 한다. 좋은 아버지로 살아간다는 것은 가족과 아이들을 위해 경제적인 부양과 양육을 위한 노력뿐 아니라 아내와의 관계를 잘 가꿔나기기 위한 헌신을 요구한다. 즉 아내와 남편이 서로의 요구와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배려하며 안식이 되는 관계를 형성할 때 아버지의 양육과 아버지 역할은 아이들에게 좋은 결실을 맺고 진가를 발한다.

아이들에게 어떤 아버지로 기억되고, 어떤 아버지로 살고 싶은지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인지를 인식하고, 아버지로 살아가는 삶에 자부심을 느끼기를 바란다.

● 글을 쓴 김성은 교수는 서울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에서 가정학을 전공하고, 도미하여 델라웨어대학교에서 가족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 브랜디와인에서 부교수 종신교수, 서울대학교에서 초빙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와 연리지가족부부연구소 연구실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 ≪좋은 아버지로 산다는 것≫, 공역서 ≪우리는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가 있다.

아버지의 존재와 비존재

몇년 전 한국에서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라는 책이 나온 적이 있다. 내용은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이 자신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글들이다.
어떤 어머니는 단칸방에서 삯바느질을 해가며 6남매를 키웠는가 하면 집에 쌀이 떨어져 이웃집에 가 품팔이를 하는 것도 그려져 있다. 또 여류작가 S씨는 자신의 어머니가 소실이었기 때문에 겪은 서러움, 그리고 P씨는 이와는 반대로 아버지가 첩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 앞뒷 방에서 같이 살아본 고통 등을 회고하는 내용도 담겨져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도 사랑이지만 아버지의 가정에 대한 무관심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하나 같이 “나는 죄인이로소이다”의 부류에 속하는 남성들이며 요즘 같으면 전부 어린이 학대죄로 경찰에 연행될 수 있는 정도다. 한국의 아버지들은 왜 비가정적인가. 왜 그렇게 무뚝뚝한가에 대한 질문에 “가정적인 아버지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답이 저절로 나온다.
아버지 노릇은 책에서 읽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가정에서 부모들이 시범을 보여야 몸에 밸 수 있게 된다. 못 본 것은 흉내낼 수 없는 법이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결혼기념일 장미꽃을 갖다주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아들에게는 그와 같은 부부애정 표시가 어색하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생각은 있는데 행동이 따라 주지를 않는다.
아버지의 사랑은 대부분 조건적 사랑이다. 자식이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거나, 사법시험에 합격했거나 남부러운 직장에 취직이 되었을 때 자랑스럽게 여기며 자식에 대해 애정을 표시한다.
반면 자식이 말썽을 일으키거나 사회경쟁에서 패배자적인 면을 보이면 싫어하고 비윤리적인 큰 실수를 저지르면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라는 소리까지 거침없이 하게 된다.
인도주의자로 불리는 간디도 자식에게는 비인도적인 아버지상을 보였다. 그는 말썽만 일으키는 아들을 미워했으며 “나는 그 애를 아들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언급했다. 이에 대한 반발로 아들 하릴랄은 힌두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해 힌두교 지도자인 간디의 얼굴에 먹칠을 해놓았다.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화해하지 않았다.
요즘의 젊은 아버지들-우리들의 자녀 세대-은 전혀 다르다. 이들의 자식 사랑은 조건적이라기보다 어머니의 사랑처럼 무조건적이며 다정다감하고 가정적이다. 언론계만 해도 과거에는 부인이나 자녀들과의 약속 때문에 회식에 빠지는 기자는 ‘못난 놈’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풍토다. 어머니보다 아버지 쪽에서 아이들을 더 감싸 도는 인상이다. 한국인들의 아버지상이 180도 변했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가 젊은 아버지들의 세대에서 떠오르고 있다. ‘아버지 부재’ 문제다. 아이들을 버리고 떠나는 아버지들의 숫자가 나날이 늘고 있는 것이다. 여권이 신장됨에 따라 이혼율도 늘고 사생아도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이혼은 아내와 헤어지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자식과도 헤어지는 것을 뜻한다. 아버지들이 다정다감하고 가정적인 것은 사실이나 자식 옆을 떠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인플루엔자가 없어지나 했더니 사스가 등장한 셈이다.
미국 어린이들 중 36.6%가 아버지와 헤어져 살고 있다. 흑인사회에 갱 문제가 심각한 것도 아버지 부재와 정비례한다. 결혼식장에서 혼자 걸어 들어가는 신부의 수가 점점 늘고 있다. 아버지가 차라리 죽었더라면 자식들의 가슴속에라도 자리잡고 있었을 텐데 자식을 버리고 가게 되니 ‘아버지’가 평생 자식들에게 한을 남기는 존재로 탈바꿈하고 있다.
‘아버지 날’에 다시 생각해야 할 오늘의 문제는 아버지의 가정적인 성격 여부가 아니다. 아버지의 존재와 비존재가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이다.

아버지는 누구일까?

» 일본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15/2013).
» 일본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15/2013).

상에는 아주 많은 아버지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다른 모습과 다른 환경을 지녔을 테지만, 공통된 바람을 가졌을 것이다. 아내에게 존중받고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가장이 되는 것. 그 자리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아버지 역할의 중요성은 정도의 차이를 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부성(父性)’을 온전히 보여주기는 너무 어렵다. 세상은 온통 좋은 아버지, 훌륭한 가장을 요구한다. ‘좋은 아빠’에 대한 지나친 강박을 호소하기도 힘들 정도로 그 역할은 당연시된다.

물론, 아빠라면 당연히 가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부성’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관한 논란의 여지도 있다. 어쩌면 ‘부성 본능’이라는 말은 믿음에 불과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사회에서 바라는 ‘아버지의 존재’ 또는 ‘아버지의 역할’은 언제나 있어왔다. 이 글에서는 우리 시대에 이야기되는 ‘부성’에 관한 논의를 다룬다.

가족은 인간 사회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다. 한 사회의 토대를 이룰 이 공동체에서 오늘날의 아버지들이 곤경에 빠져 힘겨워 보인다. ‘좋은 아버지’에 대한 정의도 혼란스럽다. 경제적 지원을 풍부하게 해줄 수 있는 ‘부자 아빠’가 좋은 아버지인지, 따뜻한 정서적 지원이 풍부한 ‘친구 같은 아빠’가 좋은 아버지인지, 심지어 모든 것을 다 만족하게 하는 ‘슈퍼맨 아빠’가 되어야 하는지…. 도대체 아버지란 어떤 존재여야 하며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 걸까.

‘아빠’라는 어설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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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학계는 물론이고 사회가 ‘아버지’ 또는 ‘아버지다움’에 주목한다. 자녀들의 자존감이나 사회성에 끼치는 아주 특별한 영향이 바로 아버지에게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쏟아지고 있다. 예컨대, 심리학자 빌러(Henry B. Biller) 박사는 아빠와의 관계 경험은 자녀들의 주도성과 공감 능력은 물론 신체건강, 정서 안정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보여준다.[1] 아버지가 자녀의 양육에 양적으로 혹은 질적으로 얼마나 많이 참여를 하고, 또 얼마나 많은 교감을 나누는가는 아이의 발달에 직접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녀의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아빠가 일으키는 긍정적인 영향은 짐작했던 것보다 크다. 누구나 내 아이가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원한다. 성공적인 삶의 근원에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을 비롯해 험난한 세상에서 온전한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자존감은 물론, 스트레스에 견디는 힘이나 자신을 통제하는 특별한 의지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한 사람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은 아버지라는 존재로부터 얻는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2] 내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빠는 어깨가 무겁다.

그뿐만 아니다. 아버지가 아이의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큰 영향을 행사하려면 무엇보다 아내에게 따뜻한 지지를 받아야 한다. 한 연구에서는 부부 관계가 좋은 가정일수록 자녀들의, 특히 딸의 경우에 지적 성장이 크게 촉진된다는 결과를 보였다.[3] 사회적으로 성공했거나 삶의 만족도가 높은 여성들의 공통점은 아버지와의 높은 친밀감을 갖춘 것이라고 한다. 이런 성공한 여성을 키워낸 아버지들의 공통점은 원만한 부부 관계와 높은 결혼 만족도를 가진 것이라고 한다. 좋은 아빠의 기본적인 조건은 좋은 남편이 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미국 텍사스 주립대의 랑글로스(Judith Langlois) 박사는 아버지를 개인의 삶에서 ‘사회화의 매개자’라고 정의했을 정도다.[4]

국내외 학계의 연구 결과들이 보여주는 아버지의 중요성, 즉 아빠의 양육 효과에 대한 다양한 결과들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세상이 요구하는 좋은 아버지에 대해서도 쉽게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좋은 아버지의 역할을 어떻게 갖추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 어떤 아빠도 좋은 아버지에 대한 모범답안을 보면서 자라지 못했다. 모든 가정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한 가정의 가장이 되기엔 준비의 시간이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결혼하면서 어쩔 수 없이 가장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설상가상으로 아이가 생기는 순간, 또 어쩔 수 없이 아버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남자는 자기 아이가 생기면서 그때부터 아버지가 된다고들 생각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아버지가 되는 것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버지가 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지 안다는 것이다. 나를 믿고 인생을 걸어온 아내와 내 능력에 생사가 걸린 아이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고 두렵기만 하다. 내 가정을 배제하고 나 자신을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참 막막하고 두려운 일이다.

00father1.jpg» 한겨레 자료사진(2013)

안쓰러운 부성(父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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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모성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본능이라고 알고 있다. 입덧을 하고 태동을 느끼고 열 달이라는 시간을 아기와 한몸으로 살다가 출산의 고통을 겪고, 젖을 물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엄마가 된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모성을 일으키는 호르몬을 지닌 엄마는 아이를 위한 희생이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모성과는 달리 부성은 어떤 본능을 말할 수 있을까.

류학자 피터 그레이(Peter B. Gray)는 부성은 인류 진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한다.[5] 돌보아야 하는 자식이 생기면 자식에 대한 애착과 관심을 두도록 행동이 진화했다는 설명이다. 일부일처제가 정착된 유인원이 가진 매우 독특한 행동 패턴이라는 것이다. 인간과 유전자가 가장 유사하다는 침팬지도 수컷은 교미를 할 뿐, 새끼를 돌보는 역할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침팬지 같은 영장류뿐만 아니라 포유류를 통틀어 수컷이 지속적으로 새끼를 돌보는 종은 전체의 3%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오죽하면 포유류를 설명할 때,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이는 동물이라고 할까. 그러므로 자식들에게 지속적인 자원을 제공하고 애정을 쏟는 역할은 인간에게 나타난 아주 특별한 행동양식이 분명해 보인다. 부성은 모성 본능만큼 확연하게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호르몬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도 아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가족에 대한 애착을 갖기 위해서는 사실상 여성과는 다른 특별한 인지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빠의 부성은 아기를 몸 안에 품었던 엄마의 모성보다 대략 열 달은 늦게 출발한다고 보아야 한다. 아빠도 엄마처럼 가슴 떨리는 열 달을 보내지만 부성과 모성은 생물학적으로 확연히 차이가 크다. 그 차이를 채우기 위해서는 아빠만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남자는 아내로부터 남편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아이로부터 아빠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제 그 이름에 맞는 역할을 찾기 위한 진심이 필요하다. 그 진심으로부터 부성은 본능처럼 불을 밝혀올 것이다. 심지어 문제행동 경향이 높은 남성일지라도 아버지가 되는 것이 결정적인 행동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밝힌 연구도 있다.[6]

아빠라는 이름은 상상하기 힘든 놀라운 힘을 가졌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00father3.jpg» 아빠는 아이의 발달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출처/ http://pixabay.com

아버지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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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들이 갖는 로망 중에 하나는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자기 고민을 아빠에게 털어놓고 상담하는 그런 일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성 친구이건, 장래 희망이건 그 어떤 고민거리도 아빠와 대화해가며 나누기를 원한다. 그때는 아버지가 가진 인생의 많은 경험과 깨달음을 전해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이런 로망을 이루는 아빠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빠와 아이가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는 장면은 참 드문 광경이다. 여성가족부가 2005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아버지와 고민을 나눈다’고 답한 자녀는 겨우 4%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버지들의 50.8%가 ‘자녀가 고민이 생길 경우 가장 먼저 나와 의논한다’고 대답할 정도로 아버지와 자녀 간의 관계의 거리는 멀었다.[7]

춘기에 접어들기 전의 아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면 자식과의 친밀한 사이는 정말 꿈같은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정서적 교류 없는 일방적 대화나 훈육은 폭력이나 다름없다. 지금이라도 소통하고 싶은 그 마음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아버지와 친밀감 없이 어린시절을 보낸 자녀는 성인으로 성장해도 그 관계가 어렵고 거북하다. 그만큼 함께 공유했던 정서와 삶이 중요하다.

평생을 자녀나 아내의 주변인으로 살고 싶지 않다면 가정이 생기는 순간부터 그 중심에서 살아야 한다. 아내를 사랑하고 아이들을 아끼는 자신의 마음을 믿어야 한다. 그 마음이 바로 노력으로 얻어낸 부성 확신이다. 아버지가 행복해야, 아내도 아이도 행복하다.

여러 사회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양의 의미가 크거나 경제적인 능력만을 요구하는 아버지상은 이미 과거에 접어든 것 같다. 급격한 사회적, 기술적 변화 앞에서 과거 아버지의 권위는 달라졌다. 가족을 책임지고 생계를 부양하는 가장의 책무는 여전하면서 이제는 자녀의 양육까지 정성을 다해야 하는 아버지의 어깨는 너무 무거워진 것 같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요구하는 자녀 양육은 단순히 아버지 역할이 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아버지만이 가질 수 있는 본성에 근거한 새로운 역할과 능력에 대한 확신을 의미한다. 단순한 희생이나 헌신이 아닌 시대가 요구하는 유쾌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00father6.jpg» 가족과의 사랑 속에서 부성은 빛을 발한다. 출처/ 영화, <파더 앤 도터(Father and Daughters, 2015)>

가족과 함께, 부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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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당신의 자식으로 사는 일이 쉽다고 말하는 자식은 많지 않다. 아버지도 누군가의 아버지로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인정하든 안 하든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모두 내 아버지의 관심과 보살핌, 그리고 사랑이 만든 결과물이다.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아버지는 가족을 지키고, 특히 자녀의 인생에 든든한 나침반이 되어주는 존재이다. 아버지의 역할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에 대한 방법이 변해가고 있다. 아버지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을 가족이 알아주고 지지해줄 때 좋은 아버지라는 이름은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 개인의 행복은 가족 안에서 아버지로서 느끼는 행복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비로소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제 우리는 삶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힘겨운 세상을 살아내느라 버거워하는 아버지의 가슴을 함께 위로해야 한다. 아버지에게도 위로와 위안이 필요하다. 아버지에게도 아버지의 그늘이 언제나 간절할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아버지는 아닐 수 있어도 어떤 아버지의 자식이 아닐 수는 없지 않은가.

부성애는 그것을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기꺼이 만들어낸 사랑이기에 더욱 위대하다. 그렇기에 가족과의 사랑 속에서 부성은 빛을 발한다.

좋은 아버지란?

아버지 노릇하기 힘든 세상이다. 우리가 자라면서 느낀 좋은 아버지의 모습과 요즘 아이들이 느끼는 좋은 아버지의 모습이 달라서 더 힘들다. 과연 좋은 아버지는 무엇이고,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난 6월 4일, 서울시 교육감 선거의 최고 쟁점은 고승덕 후보의 딸과 조희연 후보자의 아들이었다. 먼저 고승덕 후보의 딸 캔디고 씨. ‘고승덕 후보는 서울시 교육감 자격이 없다’는 글을 본인의 페이스북에 올려서 대단한 파장을 불러온 주인공이다.

“나는 서울시민이 아니지만, 서울시 교육의 미래가 걱정돼 글을 쓴다”고 말문을 연 캔디고 씨는 “서울시 교육감에 출마한 아버지는 실제 자식 교육에 무관심했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 고승덕은 교육은커녕 말도 걸지 않았다. 어머니가 나와 동생을 뉴욕의 학교에 보내려고 미국으로 데려온 뒤 한국에 남은 고승덕 후보는 우리와 연락을 끊었다. 나는 11살 때 아버지 없는 삶에 적응해야 했다”며 아버지의 실상을 폭로했다. “전화나 인터넷이 있었는데도 나와 동생의 안부를 물은 적이 없다. 자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금전적인 부분을 포함해 우리의 교육을 지원한 적이 없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를 향한 대중들의 시선은 싸늘해졌다. 교육감 선거를 불과 4일 앞둔 날이었다.

이에 고 후보는 “자녀들의 교육에 대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며 공작정치 의혹을 언급하면서 반발했지만, 여론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교육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은 충분한 논란거리였고, 이는 이번 선거의 결정적인 화두가 됐다.

경쟁자였던 조희연 후보자에게는 아들이 있었다. 조 후보의 둘째 아들 조성훈 씨는 인터넷 게시판에 ‘서울시 교육감 후보 조희연의 둘째 아들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인간으로서 조희연은 고통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를 어느 순간에서나 생각하는 사람이고, 지나칠 정도로 검소하고 돈 욕심 없이 살아왔으며, 누구보다도 제 말을 경청해주시고 언제나 대화를 강조하시는 분이다”라며 아버지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조 후보 아들의 응원 글은 순식간에 포털사이트 상위 검색어에 오르면서 화제가 됐다. 조희연은 아들이 인정하는 ‘좋은 아버지’였다.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은 조 후보의 당선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결과론적으로 이번 교육감 선거의 키워드는 ‘아버지’가 됐다. 한 사람은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고, 한 사람은 아버지의 역할에 실패했다. 좋은 아버지가 좋은 자녀를 키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회적인 성공 여부를 떠나서, 인간의 기본인 아버지로서의 역할은 중요한 문제였다.

한 사람에게는 커다란 시련을 가져온 일이지만, 이 해프닝 덕분에 우리는 ‘과연 좋은 아버지가 무엇인가?’라는 좋은 사회적인 화두를 선물로 받았다. 가정이 바로 서야 사회 전체가 바로 선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부성의 위기 시대!
좋은 아버지가 필요하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유행처럼 도는 말이 있다. ‘할아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최고의 아이를 만든다’는 것이다.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아버지는 침묵을 강요당하기도 했고, 반대로 무거운 책임감을 부여받기도 했다.

‘부성의 위기 시대’라는 말은 이제 낯선 단어가 아니다. 집에서 남자가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밤낮없이 일해 자녀 뒷바라지를 하고, 부모를 모시고, 자신의 노후까지 대비해야 하는 가장의 삼중고를 마음으로 헤아려주는 사람은 없다. 가족을 위해 희생한 대가치고는 너무 쓰다는 것이 이 시대 아버지들의 말이다.

사실 고승덕 후보를 보면서 반성하는 아빠들도 많았다. “나는 과연 아이들에게 잘 대하고 있는지 반문하게 되더라. 그리고 스스로 냉철하게 따져보니 스스로에게도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었다”는 것이 실제 아버지의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의 솔직한 말이었다. 부성의 위기 시대에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현실이다.

권위주의적인 폐해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면서 어느새 제자리에 있어야 할 순기능적 권위마저도 부정되고 있다. 친구 같은 아버지를 요구하면서, 항상 곁에서 너그럽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방관하는 아버지가 올바른 아버지상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녀 교육의 중심은 점점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는 조력자로서의 역할만 강조되는 것이 현실이다. 한마디로 부성애가 모성애를 거드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 취급을 받고 있다.

<좋은 아버지 수업>을 쓴 서울대 임정묵 교수는 “결국 아버지는 자식의 모든 것을 품어 소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며 “답답하고 꽉 막힌 사람이다가도 금세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모습으로, 한없이 무섭고 엄하지만 이내 선한 모습으로 돌아와야 할 때를 잘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존경받는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다
다시 짚어보는 아버지라는 존재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짓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사람은 아이가 힘들어할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프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직장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지는 않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용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그러고는 끊임없이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 하며 자책한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행복은 자식들이 환하게 웃을 때다.”

‘아버지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유명한 글이 있다. 수많은 아버지들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유명한 글이다. 저자가 명확하게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말이다.

‘아버지’라는 단어에 우리가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라는 게 있다. 사회가 바뀌면서 아버지의 얼굴도 많이 바뀌었다. 아버지가 자녀를 키우는 방법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오래전부터 내려온 자녀 교육법 중 하나는 아버지와 아들이 가깝게 붙어 지내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장사, 농사, 목공, 재단 등을 가르쳤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존재는 점점 무력해지고 있다.

아버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죽어서도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인 성공이나 실패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신념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살아야 한다. 신념과 열정으로 살아간다면, 아버지로서의 할 일은 모두 다 한 것이다. 성공한 아버지만이 자녀 교육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고승덕 후보 역시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인물이지만 성공한 아버지가 되지는 못했다.

어려운 삶을 꾸리는 데 지쳐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없는 가장은 나쁜 아버지일까? 자식이 잘못했을 때 체벌을 하는 아버지는 폭력 아빠로 잡아들여야 할까? 좋은 아버지에 대한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공통적인 기준은 있다. 바로 ‘자녀에게 존경받는 아버지’다. 고승덕 후보와 조희연 후보의 결정적인 차이 역시 존경에 있었다. 조희연 후보는 자녀의 존경을 받았고, 고승덕 후보는 그렇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은 돈을 많이 번 사람도, 사회적인 평판이 좋은 사람도 아니다. 자녀가 “나는 우리 아버지를 닮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한다면, 그는 아버지로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다. 존경받는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아버지가 아버지 본인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아버지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은 것이다. 사회적인 명망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거나 적게 버는 것과도 전혀 다른 문제다. 아버지가 적은 돈을 벌어도 스스로의 삶에 충실하다면, 자녀들은 절로 아버지를 존경하게 된다.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려면?
존경의 마음은 존경받는 사람이 느끼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의 행동과 생각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느껴야 진정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느 아버지라도 때로는 좋은 아버지, 때로는 나쁜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아버지는 아이들과 마주치는 횟수가 엄마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역할이 필요하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며 아이들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아버지, 그러면서도 상당한 유연성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는 아버지라면 성공한 아버지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져라
세상을 좋게 보는 습관을 들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가 부정적이면 아이도 부정적이 되기 쉽다. 좋은 것만을 보여주면서 살라는 의미가 아니다. 아무리 흉한 것을 보더라도 그 또한 세상을 이루는 한 요소라는 사실과 그 속뜻을 살필 수 있는 아이로 기르면 좋을 것이다. ‘세상이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생각하는 바른 길을 걷겠다’는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지닌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

자녀와 대화를 많이 나누어라
친절한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실패의 힘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면, 가끔 아이에게 분노를 해도 된다. 다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대화를 많이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녀가 먼저 말해주기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아버지가 먼저 고민이나 세상 사는 이야기, 힘든 일이 있다면 그것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 부모님이 실패한 이야기는 아이에게 큰 힘이 된다. 아이가 실패했거나 좌절했을 때, 어떤 위로의 말보다 효과가 있는 것은 부모가 젊었을 때 겪었던 실패담이다. 이것이 아이들을 포근하게 감싸줄 것이다.

부족한 점은 드러낼수록 좋다
세상의 어느 누구라도 부족한 점은 있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그 부족한 점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숨기지 말고 떳떳하게 내보일 것을 추천한다. 그런 당당함이 단점을 보완해주고 자녀와의 거리도 가깝게 만들 수 있다. 자녀들이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은 객관적인 시선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을 통하는 사이에 생기는 것이다.

책을 많이 읽어라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름 아닌 ‘평생 책을 읽는 습관’이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일수록 하나같이 책벌레였다. 미국 교육과학연구소가 발표한 <미국의 리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보고서를 보면 미국 사회를 끌어가는 지도자들은 초등학교 시절에 좋은 책을 많이 읽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에 읽은 책이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결론이다. 책을 읽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것은 백 마디의 말보다 교육적인 효과가 있다.

10억의 유산보다 한 푼의 소중함을 가르쳐라
세계 최고의 부자로 꼽히는 워렌 버핏은 그의 자녀들에게 큰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는 자녀들에게 그 많은 재산을 증여하거나 상속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한다. 아이들과 어려서부터 철학을 공유하면서 한 단계씩 전진한다면 우리의 아이들도 주위를 훈훈하게 하는 착한 성공을 추구하면서 세상을 밝힐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가장 불행한 사람은 오직 자신을 위해서만 돈을 쓰는 사람이다. 우리나라 부자들은 흔히 배고픈 부자가 많다고 한다. 또 그 자녀들은 철없는 부자가 된다고 한다.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버는 데 집착한 나머지 인색한 부자, 돈에 배고픈 부자이지만 그 아들은 반대로 아버지가 벌어놓은 돈을 펑펑 쓰는 철없는 부자가 된다. 게다가 그 자녀는 돈에 인색한 아버지를 존경하지도 않는다.

부담감을 떨쳐버리는 것이 좋다
스스로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부담감을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헌신적인 아버지만이 자녀 교육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뒤흔들었던 인물 가운데 25%는 실패한 아버지를 두었다. 그러니 고개를 숙이고 다닐 필요는 없다. 자녀들이 가장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아버지가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다.

백 마디 말보다 한 통의 편지를 써라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하는 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내 화를 내고 또 이내 반성하는 못난 부모가 되기 쉽다. 그럴 때일수록 아이의 단점을 보지 말고 장점을 더욱 북돋우면서 취미도 키워주는 장기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끊임없는 인내와 기다림의 연속이다. 퇴계 이황의 가문이 이후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들과 손자, 친인척 등 후손들에 대한 따뜻한 가르침을 담은 편지들이 큰 교훈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좋은 아빠 되기 플랜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따라 아버지의 역할이 조금씩 달라진다. 지금 내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잘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현명한 행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 이 모든 플랜은 자녀가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일련의 과정이다. 아이들이 자기 일을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것, 좋은 아빠의 기본 조건이다.

01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태어났을 때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자유롭게 해보게 하고,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사귀는 버릇을 들인다면, 나중에 사춘기 때나 대학생 시절에 의사표현을 하거나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02초등학교 고학년∼중학교 1학년
이 시기에 추천하는 것은 ‘집중의 습관’이다. 좋아하는 것에 재미를 붙이면서 무엇이건 자신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에 빠져드는 시기다. 공부하는 습관과 책 읽는 습관이 여기에 포함되면 더할 나위가 없다. 이때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을 선택하고 원하더라도 아이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끔은 나쁜 아빠와 나쁜 엄마가 되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 시기에 외형적인 성적 향상을 지나치게 강제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부작용을 초래한다.

03중학교 2∼3학년
사춘기, 주위 환경에 민감한 시기다. 아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한다. 더불어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게끔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부모에게도 수다를 떨게 하는 것이 좋다. 엄마는 아이와 학교 이야기를, 아빠는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때부터는 학교 공부도 조금씩 신경 쓰게 하는 것이 좋다. 단 자신의 취미를 가꿀 기회를 주는 것 또한 공부 습관만큼이나 중요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고 중요한 시기가 이때라고 한다. 이 시기에는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과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중요하다. 이 두 가지만 갖추어도 이 시기를 성공적으로 보낼 수 있다. 여전히 공부 습관을 들이는 데 집중하고, 그 대신 아이가 호기심을 느껴 뭔가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 즉 하고 싶은 것이 생기게 하는 게 중요하다. 다만 그 하고 싶은 것은 초등학교 때 느꼈던 재미가 아니라 열망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04 고등학교 시절
이때부터는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이 필요하다고 마음먹은 일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가장 좋다. 이 시기에 자신을 찾거나 어느 분야가 좋을지 고민하는 것은 늦은 감이 있다. 고등학교 2~3학년 때에는 자신이 필요성을 느끼는 분야에만 집중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자신이 집중한 분야, 본인이 원했던 일에서 일정한 성과를 내고 그에 대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면 아이들은 이제 사회로 나갈 준비를 끝낸 것으로 여겨도 된다.

아버지란 누구인가? (Who is father?)

아버지란 때로는 울고 싶지만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어머니의 눈물은 얼굴로 흐르지만 아버지의 눈물은 가슴으로 흘러 가슴에 눈물이 고여 있다. 아버지의 울음은 그 농도가 어머니 울음의 열 배쯤 될 것이다.

아버지는 가족을 자신의 수레에 태워 묵묵히 끌고 가는 말과 같은 존재이다. 정작 아버지가 옷걸이에 걸고 싶은 것은 양복 상의가 아니라, 아버지 어깨를 누르고 있는 무거운 짐이다. 아버지의 이마에 하나 둘 늘어나는 주름살은 열심히 살아가는 삶의 흔적이다. 아버지의 무겁기만 한 발걸음은 삶의 힘겨움 때문이다. 아버지의 꾸부정해진 허리는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출근하는 직장은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가슴속에 꿈 하나 숨기고 정글 같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위에서 짓눌러도 티 내지 않고 받아들여야 하고 아래에서 치받아도 피할 수 없다.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참아야 한다. 가정의 행복이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자연히 ‘나’는 없어지고 ‘가족’이 삶의 전부가 된다.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강박감과 책임감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 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자식은 남의 아버지와 비교하면서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하여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란 침묵과 고단함을 자신의 베개로 삼는 사람이다. 말없이 묵묵한 아버지가 톡 던지는 헛기침 소리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건재함을 알리는 짧고 굵은 신호이다. 아버지란 겉으로는 태연해 하거나 자신만만해 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에 대한 허무감과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괴로움을 겪는 존재이다. 아버지는 항상 강한 사람이 아니다. 때로는 너무 약하고 쉬 지치는 연약한 한 인간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어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기대한 만큼 아들딸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최고의 기대는 자식들이 반듯하게 자라주는 것이며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삶의 보람을 느낀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가족들 앞에서는 기도도 안 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 큰소리로 기도도 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길을 내면 자식은 그 길을 걸어간다. 아버지의 말은 씨가 되어 자식의 꿈이 되고 삶이 된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모방’이다. 자식은 아버지가 하는 모든 것을 보고 모방한다. 자식은 ‘설명’보다 ‘모범’을 필요로 하고 있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라는 속담이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남 모르는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아들, 딸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산소처럼 항상 자식 곁에 있지만 아버지는 그 깊은 사랑을 감춘 채 대기하고 있다. 아버지는 비탈길에 서 있는 나무와 같은 존재이다. 위험한 등산길에 등산객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처럼 자식들이 힘들 때 쓰러지지 않고 살게 하는 삶의 기둥이다. 아버지의 손은 자식을 위한 삶이 그대로 박혀 있는 손이다. 바로 그 손으로 자식이 넘어지지 않게 손을 잡아주면서 사랑의 빛을 발한다.

아버지는 자식의 힘이고 자식은 아버지의 힘이다. 자식은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아버지의 사랑을 먹으면서 성장하고 있다. 성공한 아버지만이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는 있는 그대로의 아버지이다. 비록 부족하고 허점이 있어도 아버지는 아버지이다. 아버지는 아버지이기에 세월이 흘러도 가슴에 하나의 뜨거움으로 다가오는 존재이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존재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처럼 무더위에 그늘의 덕을 베푸는 존재이다. 끝없이 강한 불길 같으면서도 자욱한 안개와도 같은 그리움의 존재이다.

우리들의 기억 속에 ‘아버지’란 존재

아버지’란 자기를 낳아준 남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당신에게 ‘아버지’란?” 참 간단한 질문이다.

하지만 어떤 단어가 문득 떠오르지는 않았다.

 

아버지를 표현하는 단어가 친근감, 다정함 어울리지 않았다.

엄격함, 무게감 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내 자신이 한탄스럽다.

아버지와 친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냥 ‘아버지’란 존재에 인색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라는 주제를 선택했다.

 

◆ 하늘같은 든든함, 아버지( KB국민은행 광고)

 

4분 30초의 영상 길이로 말한다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영상이었다. 하지만 이 영상을 보며 나는 4분 30초가 아닌 나의 추억들이 머리를 스쳐지나 갔다. 내용은 간단하다. 40개월 미만 어린 자녀를 둔 젊은 아버지들이 등장하여 아동 학습 발달에 미치는 아버지의 역할이라는 명목으로 실시하는 몰래카메라 형식이었다. 질문의 내용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말한 건 언제인가요?’ 등 이었다.

단지 주어만 바뀐 질문을 다시 던진다. ‘아버지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말한 건 언제인가요?’ 젊은 아버지들은 고심에 빠지며 질문에 쉽게 답을 하지 못한다. 그 순간 자신을 키우 신 아버지의 영상이 등장하며 젊은 아버지들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영상의 아버지들은 아이들에게 무슨 큰 잘못을 했는지 미안하다는 말 만 반복한다. 뭐 그리 잘못을 했는지, 다 자식들이 몰랐을 뿐인데. 나도 영상을 보며 마음이 뭉클해지며 눈이 붉어졌다. 왜 나는 이제야 ‘아버지’라는 존재를 이해하는가?,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 아빠는 슈퍼맨이야, 얘들아 걱정마 ( 싸이- 아버지)

아버지를 떠올리면 많은 노래들이 있다.

난 많은 노래 중에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즐거운 노래인 싸이의 아버지를 선택하였다.

눈을 감고 노래를 들어보자. 그리고 느껴보자. ‘아버지’를

 

 

 

YO~ 너무 앞만 보며 살아오셨네

어느새 자식들 머리커서 말도 안듣네

한평생 처 자식 밥그릇에 청춘 걸고

 

새끼들 사진보며 한푼이라도 더 벌고

 

눈물 먹고 목숨 걸고 힘들어도 털고 일어나

이러다 쓰러지면 어쩌나

아빠는 슈퍼맨이야 얘들아 걱정마

 

위에서 짓눌러도 티낼 수도 없고

아래에서 치고 올라와도 피할 수 없네

무섭네 세상 도망가고 싶네

젠장 그래도 참고 있네 맨날

아무것도 모른체 내 품에서 딩굴거리는

새끼들의 장난 때문에 나는 산다

힘들어도 간다 여보 얘들아 아빠 출근한다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더이상 쓸쓸해 하지 마요

이제 나와 같이 가요

 

어느새 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아빠는 바라는 거 딱 하나

정직하고 건강한 착한 아이 바른 아이

다른 아빠 보단 잘 할테니

학교 외에 학원 과외 다른 아빠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고자 무엇이든지 다 해줘야 해

고로 많이 벌어야 해 너네 아빠한테 잘해

 

아이들은 친구들을 사귀고 많은 얘기 나누고

보고 듣고 더 많은 것을 해주는 남의 아빠와 비교

더 좋은 것을 사주는 남의 아빠와 나를 비교

갈수록 싸가지 없어지는 아이들과

바가지만 긁는 안사람의 등살에 외로워도 간다

여보 얘들아 (얘들아) 아빠 출근한다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더 이상 쓸쓸해 하지 마요

이제 나와 같이 가요

 

여보 어느새 세월이 많이 흘렀소

첫째는 사회로 둘째 놈은 대학로

이젠 온가족이 함께 하고 싶지만

아버지기 때문에 얘기하기 어렵구만

세월의 무상함에 눈물이 고이고

아이들은 바뻐보이고 아이고

산책이나 가야겠소 여보

함께가주시오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더 이상 쓸쓸해 하지 마요

이제 나와 같이 가요 오오~

당신을 따라갈래요

 

아버지’를 느꼈나요? 전 노래를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힘든 사람이다. 항상 자신 보다 자식을 생각하며 돈을 벌고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자식에게 머라도 해주고 싶은 그런 심정을 가지고 계신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아버지의 고마움보다는 항상 어머니의 고마움을 먼저 떠올린다.

당연한 일이다.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어려운 사람이라는 인식과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더 많이 보고 자신의 곁에 더 많이 있어주었다. 아침에 잠시 보고 밤늦게 돼서야 돌아오시는 아버지는 자식 곁에 있기보다는 가족을 위해 한발 짝 더 뛰어다니셨다.

지금도 아버지를 다 이해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어릴 적 보다는 아버지를 조금 이해 할 수 있는 것 같다. 내 곁에 있기보다는 항상 밖에 계신 아버지를 보며 원망한 적도 있다. 원망은 원망을 나을 뿐이다. 나뿐만 아닐 것이다. 아버지라는 존재를 왜 잊고 사는지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가족이라는 무게감을 견뎌가며 지금까지 왔을 아버지들, 아버지들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많이 못한 현실, 아버지의 엄격함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알기 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온 것은 아닐까?

 

◆ 나에게 ‘아버지’란

▲ 출처= 아버지와 아들, 네이버포토

이번 소제목은 ‘아버지’란으로 정했다. 왜 이렇게 정해냐고? 그냥이다.

지금 당장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사랑한다고 말을 전해라. 그리고 아버지와 지금까지 쌓아 왔던 것도 다 털어버려라.

아버지와 앉아서 이야기 할 때 말씀을 잔소리로만 듣지 말고 진심으로 판단해라. 그게 욕일지라도 받아드려라. 아버지이니깐 널 키워주신 아버지시니깐

아버지 앞에서 많이 웃어드려라. 당신이 살아 온 세월만큼 아버지는 웃음을 잃어 가신다. 회사일이 힘드셔서, 부인이 바가지를 긁어서 다 아니다. 우리의 미소를 보기 위해 아버지는 자신의 웃음을 포기하신다. 아니 자신의 감정을 뒤로 한 체 우리를 생각하신다.

가족’이라는 둘레 안에 ‘아버지’라는 무게를 견디기 위해 오늘도 힘내시는 ‘아버지’께

▲ 출처= 사랑합니다, 아버지 , 정연욱 갤러리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이 말 꼭 하고 싶었어요.

사랑합니다. 아버지

아버지, 사랑합니다.